아사히 신문은 집단 자위권 관련 논의를 진행한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안보법제간담회·이하 간담회)에 소속된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단순한 장식물에 불과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등 나라의 미래에 영향을 줄 중대 사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고 보도했다.
우선 형식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이지만 논의 자체는 독립성과는 거리가 먼 '관제 협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사히는 15일 아베 총리에게 전달될 간담회의 보고서 작성 작업을 올 1월 이후 좌장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학 학장과, 다카미자와 노부시게(高見澤將林·방위성 출신), 가네하라 노부가쓰(兼原信克·외무성 출신) 등 2명의 내각관방 부(副)장관보가 주도했다고 전했다.
아베 정권에서 외교·안보정책과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 2명이 간담회 정식 구성원도 아니면서 논의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만큼 간담회의 결과물은 아베 총리와 그 주변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아사히 신문의 취재에 응한 한 위원은 "지난번(제1차 아베 내각 때)에는 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관료가 완성했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우리는 정권을 위한 장기(將棋) 돌에 불과했다"며 "신뢰받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푸념했다.
이 같은 구조 속에 보고서 내용은 아베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뀌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안보법제간담회는 처음에 전면적인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을 목표로 논의했지만 아베 총리가 행사범위를 최소한도로 하는 '제한적 용인론'을 제기하면서 보고서 내용도 그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위원들이 제대로 내용을 검토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례로 지난 3월17일 마지막으로 열린 안보법제간담회 전체회의 때 위원들은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의 원안을 각자 필사한 뒤 협의에 임해야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간담회 사무국 측이 보안 문제를 이유로 개별 위원들에게 원안 전문을 담은 프린트물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서를 집에 가져가 차분히 읽어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 위원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숙의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안보법제간담회는 제1차 아베 내각 때인 2006∼2007년 설치된 뒤 아베 정권이 단명(1년)하면서 흐지부지됐다가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부활했다. 현재 총 14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편,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와의 인터뷰에서 집단 자위권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면 논의가 징병제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며 "왜냐하면 전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자위대에 들어온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토 전 간사장은 또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면 "미국의 요청으로 자위대가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것은 충분히 상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우경화 경향을 거론한 뒤 "'해석 개헌'이 이 흐름을 타는 것은 위험하다"며 "헌법 논의를 정면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해석 개헌'은 아베 총리가 개헌이 아닌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려 하는 상황을 지적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