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엄마의 눈물 "나 혼자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겠어요"

"힘들어 보이는 학부모를 집에서 재운 다음날 까치가 울었어요"

"사고났다는 소리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

진도 주민인 이모(61·여) 씨는 지난 달 16일 사고 소식에 생업도 내팽겨치고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달려왔다.

이 씨는 슬픔에 젖어있는 실종자 가족에게 다가가 손도 잡아주고 눈물도 닦아주며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 "까치가 울더니 결국 아이가 엄마한테 돌아오더라구요"

그가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30일. 엄마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이 씨는 그동안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

이 끔찍한 사건이 이토록 지리해질 줄은 몰랬다던 그는 사실 첫 일주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다시 체육관으로 나왔다. 남겨진 가족들이 이 씨의 눈에 아스라히 밟혔던 것이다.

"집에 갔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섬에서 김 매고 사는데 이곳 가족들 생각에 일도 안 잡히고…어차피 요즘 장사도 안돼요"

이 씨는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띄어주지 말라"며 손사레를 쳤다.

그가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곳에 머물면서 기적같으면서도 가슴 먹먹한, 그래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줄 수 있었던 '직은 사건' 하나가 생긴 것이다.

이달 초, 이 씨는 자녀를 잃은 슬픔에 힘겨워보이는 한 학부모를 자신의 집에 데려갔다.

남편 없이 큰 딸과 둘째 아들을 혼자서 데리고 살아가던 그 어머니는 딸을 잃은 충격과 아픔에 체육관에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면서 하루하루 쇠약해져갔던 것.


보다못한 이 씨는 그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가 억지로라도 밥 한 숟갈을 떠먹였고, 좋은 집은 아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던 실내체육관보다 아늑하고 온기가 있는 자신의 방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 씨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침에 까치가 네 마리 날아오더니 우리 집 마당에서 막 울더라고. 생전 한 번도 까치가 그렇게 집에 온 적도 울어댄 적도 없었는데, 아이고 그 애기가 올랑가 하더만 진짜 애기를 찾았어."

그의 눈은 금세 촉촉해졌다.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알든가 모르든 간에 편히 좀 자게 한 뒤 올라가게 하고 싶었다"며 소박한 말투로 당시 바람을 전했다.

◈ "자원봉사자인 나까지 가면 이 자리가 더 허전하지 않을까"

전남 진도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저무는 바다 앞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노란 리본을 잡고 있다.
이달이 돼서야 진도항을 찾았다는 또다른 자원봉사자 강모(58) 씨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멋쩍은 듯 입을 열었다.

"사고를 접한 뒤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오게 됐다"는 강 씨는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슬퍼만 하고 있다가 그래도 한 번 와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주에서 이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말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강 씨는 자신의 가게를 찾은 "여섯 살짜리 꼬마의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6살 먹은 아이가 세월호 참사 뉴스를 보더니 "의사 선생님이 다친 사람들 다 고쳐줄 수 있다, 다 나아서 엄마한테 갈 거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눈물이 쏟아졌다"는 강 씨.

그는 "어린 아이가 봤을 때도 지금 이 상황은 좋지 않고 비상식적인 상황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그 아이 덕분에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이 곳으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줄어들면서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나까지 나가면 이 자리가 더 허전하지 않겠냐"는 그는, 혼자 또 바다를 바라보며 울고 있을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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