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서방은 '불법투표'라며 반발했다.
◇ 분리주의 세력 "러시아에 편입 요청"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리주의 세력은 분리·독립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독립 선언과 함께 러시아에 병합을 요청했다고 AFP와 이타르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도네츠크주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정부 공동의장 데니스 푸쉴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1일 주민투표의 결과와 공화국 주권 선언에 기초해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이 지금부터 독립국가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푸쉴린은 이어 "도네츠크 주민은 언제나 러시아의 일부였고 러시아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였다"며 "주민들의 의지를 바탕으로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러시아 연방에 도네츠크공화국의 편입 문제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루간스크주도 뒤이어 독립을 선포했다. 루간스크주 민선 주지사 발레리 볼로토프는 이날 집회에서 "우리는 (수도) 키예프 쿠데타 세력의 전횡과 유혈 독재, 파시즘,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 길, 법치의 길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루간스크주를 장악한 일부 분리주의 세력은 이에 앞서 러시아와의 합병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대부분 지역을 장악 중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에서는 전날 주민투표가 치러져 도네츠크에서는 투표자의 89%, 루간스크에서는 96.2%가 독립을 지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 러시아 "투표 결과 존중" vs 우크라·서방 "불법 투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속전속결' 처리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동부지역의 독립을 곧바로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투표 결과는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크렘린궁 공보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는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주민들의 의사 표현을 존중한다"면서 "투표 결과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도네츠크, 루간스크 대표들 간 대화를 통해 폭력 없이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서방은 주민투표 과정이 불투명하고 적법하지 않다면서 투표 결과와 독립 선언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은 "분리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주민투표라고 부르는 광대극은 범죄를 감추려는 선동적 위장"이라고 비난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제 주민투표라는 이름 아래 치러진 선거는 불법이며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날 28개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 뒤 발표한 성명에서 "EU는 우크라이나의 단합과 주권, 독립, 영토적 통합성을 확실히 지지하며 러시아도 같은 원칙을 지켜줄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불법적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EU, 제재 확대…대응·중재 '동분서주'
EU와 미국 등 서방 측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확대 등 대응에 나서는 한편으로 대화 노력을 이어가며 분주한 모습이다.
EU는 이날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뱌체스라프 볼로딘 크렘린 행정실(비서실) 제1부실장 등 고위 관리 13명에 대해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 등을 결정했다.
EU는 또 가스회사와 석유운송기업 등 크림지역에 기반을 둔 2개 기업을 처음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13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방문, 친러시아계 세력과 만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노력을 지원할 계획이다.
OSCE는 이날 디디에 부르칼테르 의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통해 러시아가 OSCE의 중재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OSCE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평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의회, 지역 등 전국의 정치세력과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국민원탁회의를 제안했다.
미국은 오는 20∼23일 조 바이든 부통령의 루마니아·키프로스 방문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불법 군사개입 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또 유럽의 에너지 안보 강화 노력과 미국-EU 간 '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문제도 의견을 나누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집단적 방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