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간 이 작은 항구는 새 이름이 자리잡을 새도 없이 유명해졌습니다. 세월호 때문입니다. 한적했던 길 위에는 상황실과 가족대기실, 언론매체들의 베이스캠프가 줄지어 차려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야 아직 익숙치 않아서 팽목, 팽목 한다지만 언론이 (왜인지) 연일 팽목항으로 보도하다 보니 진도항이라는 새 이름은 정말 사라져 버렸습니다.
진도는 풍광이 수려하고 풍요로운 섬입니다.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전국에서 세번째로 큰 섬이기도 합니다. 명소도 많습니다. 1년 중 한 번만 열린다는 신비의 바닷길, 조선시대 화백 소치 허련 선생의 화실이자 정원이었던 운림산방, 다도해의 섬 사이로 저무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세방낙조 등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쯤이면 원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시기입니다. 하지만 '특별재난구역' 타이틀 앞에서 이곳들도 휑해졌다고 합니다.
진도에 평생 산 어민들은 "태풍, 홍수는 봤어도 이 평화로운 앞바다에 이런 인재(人災)가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읍니다. 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위 관료들의 유배지로 유명했다는 진도. 날고 기는 문인들이 낙향해 꽃피운 융숭한 문화는 무심한 바다 앞에 빛을 바랬습니다.
대신에 '진도항' 아닌 '팽목항'이, 운림산방 말고 실내체육관이 난데없이 분주해졌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마 지난 27일간 진도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고 가장 자주 매스컴을 탄 장소가 이 두 곳일테니까요.
세월호가 침몰한지 어느덧 28일째, 한달 가까운 기간 취재차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하루는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차창 밖으로 붉게 퍼지는 저녁 노을을 발견했습니다. 산등성이와 수평선 너머로 낙조가 살짝 내려앉더군요.
그 아름다운 일몰 앞에서 불현듯 한 학부모가 진도항 신원확인소 흰 천막 위에 적어 놓은 글귀가 떠오른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고가 발생한지 며칠 채 지나지 않아 적힌 글인데, 검은 유성펜으로 쓰여서 여지껏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일부만 전해봅니다.
"저는 제 둘째 자식에게 이렇게 가르치렵니다. 이 나라 이 땅에 사는 한 이 무능한 정부와 관료들을 믿지 말라고요. 그리고 이 땅을 떠나라고 가르치렵니다."
하루종일 오고가는 발길과 끊임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앞에서, 이 분은 아마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천막 위에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요. 이 아름다운 땅에 어느덧 한달 가까이 죽음과 상실의 기운이 맴돌고 있습니다. '진도항'과 체육관에 내걸린 노란 리본은 앞으로 진도에서 그동안과 전혀 다른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걸 가리키고 있습니다. 진도는 이렇게 일몰의 '명소(名所)'에서 침몰의 '명소(命所)'가 돼 버렸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무겁게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팽목항 아니 진도항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