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는 이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의 반대 속에 주민투표가 진행됐으며 일부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에서 불법 투표라고 비난하지만, 분리주의 세력은 투표 결과를 토대로 더욱 기세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 "분리·독립 투표 찬성 90%"…일부 충돌
총 인구가 약 650만명에 달하는 동부 두 지역에서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투표가 실시됐다.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결성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선거관리위원회의 로만 랴긴 위원장은 투표가 끝난 지 2시간 만에 "유권자 약 300만명 중 75%가 투표했고 89%가 찬성했다"고 말했다. 루간스크주에서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나 도네츠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투표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인쇄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자치 행위를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하는 방식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군이 투표 저지에 나서며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도네츠크주 크라스노아르메이스크시(市)에서는 정부군이 분리주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최소 2명이 쓰러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정확한 사상자 숫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군은 선관위 건물로 투표함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다 시위대와 실랑이가 벌어지자 발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간스크주 노보아이다르시의 선관위 건물에도 정부군이 공격을 가해 선관위원들이 대피했으며, 크레멘스크에서는 투표소로 진입하는 정부군 장갑차를 막던 주민 2명이 총에 맞았다.
또 분리주의 민병대는 이날 새벽 정부군이 장악한 도네츠크주 슬라뱐스크 외곽의 방송 송출탑을 공격했으며, 정부군 역시 인근 외곽 검문소의 민병대원을 진압했다.
◇ 부정선거 의혹…분리주의 세력 "진로는 차차 결정"
현지 언론 '키예프포스트'는 전날 도네츠크 인근에서 찬성 표시된 투표용지 10만장을 싣고 가던 무장요원들이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년 전 작성된 선거인 명부가 그대로 이용됐고 지역 주민이 아니어도 여권만 있으면 투표할 수 있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투표용지 인쇄 과정에 보안 감시가 없었고 선거인 명부가 중복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또 투표 문항이 모호해서 유권자들은 '찬성'의 의미를 '독립'과 '자치', '러시아로 편입' 등 제각각으로 해석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로만 랴긴 위원장은 "진로는 차차 논의될 것"이라며 "우리는 일단 변화를 원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분리주의 세력은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독립공화국 창설과 중앙정부와의 단절을 선언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부 하리코프주와 남부 오데사주 등도 잇따라 주민투표를 하는 등 분리주의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은 오는 25일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에도 불참할 가능성이 크다.
AP통신은 주민투표 결과로 우크라이나 국가 해체가 앞당겨지고 서방과 러시아 간의 긴장과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우크라·서방 "주민투표 불법" 비난
우크라 중앙정부는 이번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앞으로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파벨 페트렌코 우크라이나 법무부 장관은 이날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주민투표는 불법이며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외무부도 이날 성명에서 주민투표가 영토적 통합성과 국가 정체에 법적 효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와 EU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주민투표 저지를 위해 힘쓰지 않은데 실망했다"며 우크라이나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지도록 국제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U도 이번 주민투표가 불법이라고 비난했으며 우크라이나 관련 제재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12일에는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사태 발발 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아르세니 야체뉵 총리를 면담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7일 주민투표 연기를 제안한 적이 있지만 이날 결과에 대해서는 수용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