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입니다"

[KBS기자 반성문 전문⑤]

여의도 KBS 본관 자료사진
KBS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실린 38기, 39기, 40기 기자들의 반성문 10편을 노조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세월호 침몰 다음날 진도 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누구보다도 가족 분들이 (구조 상황을) 들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당한(?) 지시에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이 떠나갈 듯 큰 박수로 화답하더군요. 오해마세요. 오직 KBS <뉴스9>에서만 그랬습니다.

"경사 났어? 박수를 치고 그래!"

편집되지 않은 실종자 가족의 반응입니다. 우리 뉴스에선 철저히 외면당한 목소리이기도 하죠. 자식을 바다 속에 홀로 둔 부모가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는 정부에 할 수 있는 당연한 분노인대도요.

박수·갈채요?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수많은 공무원과 경호원, 연단 위의 박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이들 공무원의 호응이 마치 가족 반응인 것처럼 둔갑한 게 문제죠. ‘날조’입니다.

저는 KBS 뉴스에서 사고 수습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수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위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던 박 대통령의 경솔한 언행을 지적하는 것도 본 적이 없네요. 박 대통령이 일반 조문객을 마치 유가족인 척 위로하는 청와대발 촌극은 언급조차 없었고요. 아! 박 대통령의 무성의한 사과를 비판한 유가족 기자회견은 일선 기자들의 항의로 겨우 방송에 나갔죠. 그마저도 메인 뉴스에는 못 나갔습니다.

덕분에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입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세월호 관련해 시민 인터뷰를 시도하다 대여섯 명의 시민에게 "제대로 보도하세요. 왜 그따위로 방송해서 개병신(KBS) 소리를 들어요"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 수모, 절대 후배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닙니다. 편파 보도를 지휘하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에 화가 났다가도 금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왜 나는 "시민단체의 통계는 신뢰할 수 없어 방송에 쓸 수 없다"는 데스크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나. 왜 나는 공기업 사장이 여당 대표에게 인사 청탁을 한 사건을 기사화 하지 않았을 때, 옆에서 벙어리처럼 있었나. 순간 순간 비겁함이 모여 지금의 '개병신' 같은 상황을 만든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말씀드립니다.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세요. 시민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편집권 독립' 외치시지 말고요.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세요. 그 편이 오히려 솔직한 겁니다. 더 이상 개병신 소리 듣기 싫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