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직 살아있다. 적어도 김모(45) 씨의 어머니(80)에게는 그렇다. 김 씨는 아직 어머니께 당신 손자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매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손자가 차디찬 물 속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날까 염려돼서다.
지난달 16일, TV에서 진도 사고 소식을 듣고 손자의 생사를 묻는 어머니께 그는 "잘 있다. 괜찮다"는 말로 안타까운 현실을 대신했다.
행여나 어머니가 TV에서 손자의 이름을 보실까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에도 위패 없이 영정 사진만 안치했다. 그러나 '손바닥을 하늘을 가리는 것'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오죽하면 우리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하늘 나라에서 우리 애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거기서 우리 애 만나서 니가 왜 여기 있냐 놀라더라도. 나는 차마 애가 죽었다는 말을 못 하겠어요…"
손자의 방문이 뚝 끊긴 이유를 궁금해하는 어머니께 김 씨는 "아들이 외국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둘러댔다.
아예 외국어 특채로 유학을 간다고 할 작정이다. 둘째 아이에게 형의 목소리로 '유학 가게 됐습니다'라며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라 시키기도 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이자, 팔순의 노모를 염려하는 아들인 김 씨는 어버이날인 오늘도 '하얀 거짓말'로 어머니를 위로한다.
"그토록 사랑하는 손자, 어머니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하늘 나라 보냅니다. 용서하세요 어머니."
세월호 희생자 문모(17) 양의 아버지 문모 씨는 5월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도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지난달 16일 사고 이후 한시도 벗지 않았던 옷이다.
"진도의 바람은 차가웠는데…24시간 이러고 있으니 이젠 제 몸 같아요."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달려갔던 문 씨. 생존자 명단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발견했지만 아이의 모습은 병원, 체육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진도의 하수구를 뒤질 때도 문 씨는 장인 어른이 건넨 패딩 점퍼를 입고 진도 곳곳을 헤맸다.
진도에서 아이의 시신을 수습해 올라온 그는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다시 시민들 앞에 섰다.
"아이들 엄마, 아빠입니다.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부탁드립니다."
"배 안에 있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모자도 호사"라며 따가운 햇볕을 오롯이 받아내던 문 씨는 서명에 동참한 시민들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일일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여기 오신 분이 당사자보다 더 울어요. 부모가 못나서 애가 죽었지, 우는 것도 못 울어. 패딩이요? 때가 되면 벗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