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지에서 답지하는 구호물품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나마 부모님들을 도와주고 있어서, 쾌적하지는 못하지만 입고 먹고 자는 데는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결코 부모님들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
지난 3일 조용히 전남 진도를 방문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한 어머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체육관에 온 국무총리가 그랬어요. 봉사자들 많이 보내고 있다고. 이 말 듣고 얼마나 성질이 나는지. 여기 있는 우리 부모들은 열흘 굶어도 안 죽어요. 맨발로 다녀도 안 죽어요".
그렇다면 부모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딱 한 가지에요. 잃어버린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겁니다.
사고가 난 날부터 지금까지 이 바람은 한결같았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 있던 시기에는 '무사히' 데려가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시신이라도 데려가는 게 유일한 희망인 거에요. 또 다른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잘못된 애들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일 어쩔 수 없잖아. 그냥 꺼내줘. 애들 머리털 뽑히고 이빨 빠져도 그냥 데려만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묻어줄 수 있게만",
◈ "높은 사람들 오는 대신 잠수사 안마나 해줘라"
그래서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은 잠수사들에게 쏠립니다. 유일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 있는 분들인 거죠. 아무리 높은 사람이 진도에 와봤자 잠수사들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거죠. 한 부모님의 이 말씀은 다른 실종 학생 부모님의 마음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국무총리 장관 다 필요 없어요. 잠수사들 제일 고마워요. 잠수사들이 목숨 걸고 하는 거잖아. 그런 잠수사들 컵라면하고 초코파이 먹고 맨바닥에서 쪽잠 잔대요. 높은 사람 아무 필요 없어요. 여기 와서 사과할 시간 있으면 잠수사들 안마나 해주고 밥이나 해주고 그러란 말이에요".
그러던 지난 4일,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 진도를 사고 뒤 두 번째로 방문했습니다.
저는 박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 박 대통령이 진도항(옛 팽목항)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먼저 도착했습니다. 창밖으로 비친 도로에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경찰이 가득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경호 안전을 위해 모든 교차로와 갓길에 경찰이 배치돼 서 있던 겁니다.
진도항에 도착하자 이미 삼엄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었어요. '주차 요원'으로 위장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일반인으로 변장한 사복 경찰도 눈에 띄게 늘어났죠.
대통령이 도착한 뒤, 가족과 비공개 회의를 진행한 가족대책본부 텐트에도 경호 인력이 겹겹이 둘러싸 접근을 통제했습니다. 한 경찰은 실종자 가족을 일반인으로 착각하고 제지하다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죠.
회의는 비공개였습니다. 당시 저는 텐트 밖 약 5m 지점에 있었는데도 학부모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애들 다 죽었잖아요. 저 안에 있는 애들 다 꺼내야지 언제 꺼낼 거에요. 이제 형체도 몰라요. 애들 형체가 다 없어졌어요. 그런 상황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요? 부모 입장에서 아이 얼굴 못 알아보는 그 기분 아느냐고요!".
이제 화낼 힘조차 없는 부모님들의 격앙된 목소리, 울분, 사무침이 텐트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홍원 국무총리 방문도 그렇고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기만 하면 이곳 진도에는 부모님들의 통곡 소리가 꼭 이어지네요.
박 대통령이 다시 진도를 방문한 목적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구조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결코 이런 목적은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이 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해가 됐을지도 몰라요. 대통령 방문 때문에 수색 작업을 지원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오롯이 지원에만 신경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잠수사들도 마찬가지죠. 대통령이 수색 바지선에 오르는 순간 반복되는 잠수 뒤 잠깐이라도 편히 쉬어야 하는 잠수사들은 고된 잠수로 피곤한 몸으로 대통령을 맞이해야 했을 겁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학부모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두 번째 진도 방문에서도 이런 말을 부모님들께 했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봐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이 어떠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눈앞이….".
과연 부모님들은 대통령의 이런 말에 동의하실까요?
확실한 건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는 환영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요. 사고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지휘하는 해군 소장이었습니다.
한 아버님은 박 대통령이 텐트에서 나간 뒤 따라 나오는 이 소장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손 말고요.
"제발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잠수사들을 제발 잘 먹여주세요. 우리가 먹을 거 갖다줄게요."
그리고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분이 우리 애들 꺼내는 최고 지휘관이래요. 다들 손 한 번씩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