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두들겨 맞대? 헬기 좀 타고 갈 수도 있지 그것 가지고 뭐라 하는거는 너무 심한거 아닌가? 마녀사냥이야!” 세월호 침몰 당시 소방헬기를 타고 현장에 간 박 지사와 관련해 한 중앙부처 간부급 공무원이 내뱉은 말이다.
촉각을 다투는 구조현장에 투입해야 할 소방헬기가 박 지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제공된 것을 두고 비판여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그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라고 반문하는 이 공무원의 발언에서 국민여론과 괴리된 일부 공무원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관련해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4월~5월 사이 중앙과 지방공무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공무원의 인식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대통령까지 나서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 문화를 타파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공무원의 무사안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동의한다’고 대답한 공무원은 전체의 20.8%(매우 그렇다 2.2%, 약간 그렇다 18.6%) 뿐이었다. 반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 응답은 55%(매우 그렇지 않다 17.0%,약간 그렇지 않다 38.0%)로 과반을 훌쩍 넘었다.
위즈덤센터 황태순 수석연구위원은 “옛말에 억지로 말을 끌고 냇가에 데려가도 스스로 마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아무리 외부에서 개혁을 하겠다고 해도 공무원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보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2,200년 전에 진시황때 관료제가 처음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최고 권력자가 관료사회를 이긴 적이 없다”면서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관료사회를 어느 정도 장악한 측면이 있지만 그 때는 독재라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와 관련한 각종 제도를 개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제도 개혁과 함께 지탄받고 있는 현재의 공직사회를 만든 공무원들의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 것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인대 정치학과 최창렬 교수는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고 법적인 개선도 필요하지만 의식.문화개혁도 필요하다”면서 “여기에 최고 리더의 움직임, 솔선수범 이런 것들이 다 어우러져야 공직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철옹성 같은 공무원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제도 개혁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겠지만 공무원 스스로 인식을 바꾸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황 위원은 “단기간에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 문화를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우면 왜 역대 정권에서 그게 성공하지 못 했겠냐?”라고 반문하며 “그만큼 어려운 문제고 그래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류희인 전 청와대 NSC 사무차장을 비롯해 일각에서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지난 1957년 미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스푸트니크 쇼크’ 같은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당시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기초교육에서부터 우주예산까지 각종 제도를 개혁했고 그 결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이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제도개혁 못지않게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바뀐 국민들의 의식과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은 “과거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단골메뉴로 공직사회 개혁 얘기가 나올 때와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면서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내 자식,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뭔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분위기를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개혁 대상이라고 몰아쳐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희망을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