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한 인사의 말이다. 여기서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이고, '늘공'은 '늘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권 창출 뒤 기세 등등하게 청와대에 입성한 정치인들이 수십 년간 공고해진 관료들의 벽을 극복 못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 청와대 인사는 "'늘공'은 좀 여유있어 보이는데, '어공'에는 어리바리하다, 어리둥절하다 이런 느낌이 있지 않냐"고 자조하면서 "뭔가를 추진하려고 하면 관료들이 안되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쫙 정리해오는데, 그걸 다 반박하기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행정의 최우선 가치 중 하나가 안정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권 초마다 벌어지는 개혁 드라이브에 공무원과 관료조직이 강하게 저항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문제는 모든 정권이 이 저항에 굴복해 단 한 번의 개혁 역사를 만들지 못했고 심지어 빠른 속도로 관료 의존증을 키웠다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관료 개혁은 개혁에 부담을 느끼는 보수진영의 반발, 개혁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을 인내하지 못한 정권의 미숙함 때문에 실패했다. 관료 개혁의 성과는 티가 안나는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저항은 즉각 나타나는 구조인 만큼,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개혁 동력을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위기 상황이 생기면 관료들이 곧바로 대응 매뉴얼을 가져왔는데, 살펴보면 개선책이라기 보다는 무마책이었다"며 "그럼에도 자신감이 떨어진 정권 입장에서는 곧바로 대책을 생산해내는 관료들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관료 우선이었다. 내각과 청와대가 70% 이상 관료들로 채워지면서 "관료전성시대가 열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정권 이념을 세운 '개국 공신'들은 변변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은 개인적 야망을 앞세울 것이라 판단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 시대의 관료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면서 "국가의 규모가 크지 않고 관료들이 소수의 엘리트로 꾸려졌을 때는, 대통령의 불호령만 가지고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관료나름의 조직 논리가 공고해진 상황에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관료조직의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개혁의 칼자루를 다시 관료에게 쥐게 했다. 29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인사시스템 전반에 대해 개혁방안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공직자의 셀프 개혁은 말이 안된다(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는 지적처럼, 관료개혁 좌초 역사는 진행형인 셈이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관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에도 한계를 보였을 거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어공' 출신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관료들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나름대로 기회를 줬지만, 이번 사고로 다시 돌아보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