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에 배치된 교사 헨리(애드리언 브로디)는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과거의 힘든 기억 탓에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 살아간다.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듯한 분위기의 학교 현장에서 헨리는 학생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도 그들을 이해하고 다독이려 애쓰는 눈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왕따 메레디스(베티 케이)와 거리의 10대 매춘부 에리카(사미 게일)가 헨리의 삶에 마치 과제처럼 불쑥 찾아든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헨리의 입을 빌려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여기 없어도 되는 사람은 다 내보낼 수 없나요?"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었는지 수염으로 까칠해진 피부에 쾡한 눈빛을 한 헨리는 극장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자기 말에 집중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다.
이어 영화는 학교 칠판에 적힌,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말을 비추면서 제 갈 길을 분명히 한다.
'지금까지 어느 것에서도 이러한 깊이를 느껴보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도 격리돼 존재하는 느낌이다(and never have i felt so deeply at one, and the same time so detached from myself, and so present in the world).'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감당해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나타내기 위해 카뮈가 사용한 '부조리' 개념은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알량한 희망으로 덮어 버릴 수 없는 우리네 부조리한 삶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이어붙인 결과물이 영화 디태치먼트인 셈이다.
헨리의 눈으로 보는 학교 현장은 매일 같이 뉴스 앵커가 "어찌 이런 일이"라고 분개하며 전하는 에피소드들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오래 전에 일상이 된 풍경들이다. 학교를 찾은 한 교육청 관계자는 "좋은 학교는 부동산 가치를 높인다"며 이제는 장사가 된 교육을 증언한다.
요양병원에 있는 헨리의 할아버지는 딸(헨리의 어머니)과 관련한 사건 탓에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간호사들에게 격하게 화를 내는 헨리의 모습은 교사들을 협박하는 학생 또는 학부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동료교사들 역시 집에 가서도 가족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괴로워한다.
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한 채 기간제 교사로 떠돌아다니는 헨리는 카뮈의 유명한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환생이다. 헨리는 전한다. "누군가는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하지만 곧 실패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듯 희망 없는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세상을 등지려는 제자 앞에서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고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던 그다.
헨리는 깨닫는다. 결국 그 부조리 덕에 사람들은 세상을 직시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영화가 무거운 바위를 굴려 산 정상에 도달하면 굴러떨어지고, 또 다시 바위를 밀어올리고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세상의 모든 시시포스에게 바치는 응원가로 다가오는 이유다.
섣불리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데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카메라는 헨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데 만족하는 모습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진 헨리의 독백, 나쁜 화질로 담긴 헨리의 아픈 과거, 학교 칠판 위에서 구현되는 애니메이션들이 극 중간 중간 끼어드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관객들 앞에 부조리의 실체를 순간 순간 드러냄으로써 긴 여운을 남긴다.
청소년 관람불가, 97분 상영,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