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이번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김빛나라(17) 양의 어머니 김정화(47.여) 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죽음을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오전 6시 조문이 종료된 올림픽기념관 임시분향소에서 딸의 위패와 영정사진을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로 옮겨놓고 나오던 길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김 씨는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고 옷도 코디해주는 친구 같은 딸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아빠가 새벽 5시 40분에 직장을 나가야 하는데 사고 전날 '선생님 생일파티도 하고 불꽃놀이도 너무 재밌다'고 밤 11시 넘어서도 자꾸 전화해 야단을 쳤다"고 후회했다.
김 씨는 사고 당시 딸과의 마지막 통화를 회상했다.
딸은 울기만 했던 어머니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하며 기도해달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었어. 아빠 무서워 데리러 와줘"라고 말한 게 딸의 마지막 통화였다.
김 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교회 수련회를 갔다 온 뒤 독실한 신앙인이 됐다.
등교 준비를 할 때마다 휴대전화로 성경 잠언서를 틀어놓을 정도였다. 학교에서도 점심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오는 8월 1일부터 7월까지 말레이시아로 단기 선교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여권도 만들어 놓았다.
김 양은 사고 3주 전 매일 교회를 가는 어머니를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부모를 챙기는 효녀였다.
손재주가 좋은 김 양은 그림과 꾸미기 등을 잘했다. 성격이 활발해 연극부에 들어가 지난해 은상을 받기도 했다. 꿈은 방송 관련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양의 꿈은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함께 물거품이 됐다.
김 양은 사고 6일째인 지난 21일 오후 7시쯤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몸으로 돌아왔지만, 따뜻한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 김 씨는 "첫날 죽었다면 6일 동안 부패가 됐을 텐데 정말 냄새도 안 나고 상처 하나 없이 자는 모습 같았다"며 "구조가 조금만 빨랐으면 딸이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애통해했다.
김빛나라 양은 지난 25일 한도병원에서 발인식을 갖고 수원연화장에서 화장된 뒤 평택에 있는 서호추모공원에 안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