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초대를 받아 모인 200여명의 손님들은 메뉴판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1.함경남도 호랑이의 차가운 고기 (푹 익히고 토마토 케첩을 곁들임)
2.영흥 기러기 스프
3.부산도미 양주 찜(야채를 곁들임)
4.고원 멧돼지구이(크랜베리 소스와 샐러드 곁들임)
5.아이스크림(작은 과자 곁들임)
6.과일과 커피
다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와중에 야마모토가 마이크를 잡았다.
"전국시대의 무장은 진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선의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다이쇼 시대의 저희들은 일본 영토 안에서 호랑이를 잡아왔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를 침입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를 자기 땅이 된 조선에서 자유롭게 사냥한 자기와 비교한 연설이다.
이 돈 많은 사업가는 어떻게 해서 조선의 호랑이를 잡았나?
◈야마모토, 150여명을 동원해 조선에서 활개치다
일본에서는 호랑이 사냥은 무사의 용맹성을 과시하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선박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야마모토는 많은 돈을 써서라도 명예나 이름을 높이고 싶었다.
더군다나 알아보니 조선총독부도 최대한 지원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1917년 11월 10일 도쿄역을 출발해 딱 한달동안 150여명을 동원해 조선 산천을 뒤지면서 떠들썩하게 사냥 여행을 다녔다.
이번 여행에서는 조선의 최고 포수 21명과 일본인 포수 3명이 가담해 8개조로 나뉘어 함경남북도와 금강산, 전라남도에서 사냥을 벌였다.
"조선 제일의 호랑이 사냥꾼 백운학과 사냥꾼 3명은 오후 4시에 함경북도 성진에 있는 남운령에 도착했다.
이들은 산 정상에서 갈라섰다.
산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몰이꾼 십여명이 산 밑에서 호랑이 몰이를 시작했다.
갑자기 산허리 나무숲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예상대로 호랑이는 산 정상을 향해 질주하려고 했다.
백운학은 호랑이와 40보 정도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소총 세 발을 연달아 쏘아 호랑이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어 함경남도 단천의 호랑이굴에서 두번째 호랑이를 사살했다.
함경남도 영흥에서는 2.1m 길이의 표범을 잡았다.
수호는 100년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 희귀한 동물로, 사진을 보면 꼬리가 표범보다 더 굵고 길다.
정리해보면, 호랑이 두 마리, 표범과 수호, 곰 각각 한 마리, 멧돼지 세 마리, 산양 다섯 마리, 늑대 한 마리, 노루 아홉 마리, 다수의 기러기와 청둥오리, 꿩이 있었다.
각 언론은 이번 사냥은 대성공이라고 보도했고, 야마모토는 으시대며 다녔다.
표범 한 마리와 수호도 같이 기증했다.
호랑이 두 마리 모두 중간 크기로 젊은 호랑이다.
표범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으나 어느 것이 호랑이와의 혼혈이라는 기록은 없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 언제나 올까?
◈남한에서 자취를 감춘 토종 호랑이와 표범
대표적인 민중예술인 민화에서도 호랑이는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면 그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 갔나?
가장 많이 포획된 시기는 일제시대였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통계연표를 보면, 1919년부터 23년간 호랑이 97마리, 표범은 무려 624마리나 잡은 것로 기록돼 있다.
일제 강점기가 36년이니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실제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전쟁이 터지고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호랑이와 표범은 언제 나타났나?
마침 일본 왕실의 귀족이 경주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주재소는 비상이 걸렸다.
이 기회에 공을 세우자고 나선 미야케 요로우 순사는 길닦기 공사 중이던 조선인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를 쏘아 죽였다.
이후 지금까지 93년간 남한에서 호랑이가 나타난 적이 없다.
북한에서는 지난 1993년 자강도 낭림산에서 호랑이 일가족 3마리가 생포되었다.
이 가운데 한 마리가 1999년 1월 서울대공원에 반입되었다.
이 표범은 마을 주민 황홍갑 씨가 설치한 올무에 허리가 걸려 생포되었다.
생전에 황홍갑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표범이 시뻘건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긴 했지만 도망가지는 못했지.
배가 꽉 조여서 그런지 표범 소리가 마치 비명 같더라고...
'캬~, 캬악~ 하는 게 말이지"
이 표범은 드럼통에 갇혀 있다가 한달 후 창경원으로 팔려갔다.
위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노덕제 씨의 부친인 노종생 씨는 호랑이(사실은 표범)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던 경찰로부터 호랑이를 잡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노종생 씨 등 진주 포수 5명은 오도산 줄기인 방아재에서 며칠간 잠복해 있다가 표범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남단에는 맹수가 사라지고 그 공백을 멧돼지가 메꾸게 된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백두산 일대에 호랑이와 표범이 산하를 누빌 수 있는 보호구역이 생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