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김기춘·남재준도 여기까지…역량의 '한계'

세월호 대참사 앞엔 국무총리도 '깃털'이다

박근혜 대통령(좌), 정홍원 국무총리. (자료사진)
302명의 사망 및 실종자라는 대참극을 빚어낸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책임은 일차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정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결론을 내렸으나, 사표수리는 사고를 수습하고 난 이후에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가 낸 사표의 수리는 6·4 지방선거 직전인 다음달말쯤이나 지방선거 직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朴대통령이 이처럼 '선(先) 사의수용-후(後) 사표수리' 수순을 택한 것은 국가적 대재난이라는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수습하기 위해선 정 총리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민을 상대로 공식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힘이 빠질대로 빠진 정 총리로 하여금 지난 1997년 말 IMF 체제의 외환위기에 버금가도록 들끓는 민심을 수습하라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세월호 참사와 민심을 수습한 이후 물러나라는 것은 민심의 '총알받이', '방패막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물러나겠다는 총리에게 수습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정치적인 면을 너무 고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총리의 한시적 유임은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차기 총리에게 세월호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지금 정 총리의 사표를 수리할 경우 바로 후임자 물색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 6.4 지방선거 이전에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 내각 총사퇴를 몰고 올 것이란 점, 그 부담을 청와대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등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

물론 정 총리 본인에게도 상당히 가혹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 총리발(發) 개각'은 당분간 미뤄지면서 상당수 장관들의 경질도 6.4 지방선거 이후 불가피해 보인다.

국정의 별 책임도 없는 정홍원 총리가 책임을 진다거나 관련 각료들을 바꾼다고 해서, 사고가 수습되거나 민심이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총리직 사퇴 기자회견을 가지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정 총리가 국무회의 혹은 정부 주요 직책의 인사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으며 '대독 총리'에 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관들은 총리의 의사를 묻기보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핵심 수석, 비서관들, 특히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의 의중을 살펴온 게 관행이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운용의 중심인물(KEY MAN)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고받자마자 안행부와 국방부, 해경, 해군, 더 나아가 전라남도와 진도군 등 주변 시군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면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나 김석균 해경청장의 입김보다 훨씬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해경만 사고 해역에 신고 이후 32분이 지난 9시 30분쯤 나타났다.

해군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고, 따라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다.

김 실장이 여객선 참사라는 대형 사고를 감지하고 민첩하게 대처했다면 302명의 희생이라는 대참사를 피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정부 부처 내에서는 김기춘 실장의 말과 지시를 대통령의 그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역대 비서설장 가운데 초특급에 가까울 정도이며 '기춘대원군'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한 김 실장의 파워 또한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을 만난 한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빈틈없이 보였지만 비서실장을 맡고 나서부터는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워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도 정홍원 총리가 아닌 김기춘 실장이 나서 안행부 장관과 해수부 장관, 해경청장, 해군참모총장 등을 수시로 독려했다면 우왕좌왕하거나 인력과 장비 투입에 있어 실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실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수습 책임자들을 장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는 보이질 않았다.

단 한 차례. 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장소에서만 대통령 뒤에 서 있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실종자 가족들과 언론, 국민이 "정부의 초동 대응이 엉망이었다"며 비판할 때도, "사고 수습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 제기를 할 때도 김기춘 실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초동 대응과 사후 수습 과정에서 뭘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비서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나름의 비서론 역할에 충실하려는 긍정적인, 소극적인 자세로 볼 수도 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 어떤 질책을 받았을 지라도, 자리를 걸고 국난에 가까운 재난을 총괄 지휘하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않았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
◈ 김기춘 실장은 여기까지다

혹자들은 그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쳤다고 말한다.

'김 실장의 역할은 끝났다. 그의 능력은 여기까지'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

검사 시절부터 김기춘 실장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김 실장은 공안 정국 시절에는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지만 전 부처가 관련된 대형 해난사고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반 국정원의 대선개입론이 불거졌으나 청와대가 검찰을 장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이석기 의원 등의 국기문란 행위마저 터졌으니까 박 대통령에겐 김기춘 실장의 공안 경험과 정부 부처 장악력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김 실장은 검찰과 국정원 등의 업무와 공안 사건 등에 대해서는 남다른 출중함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의도대로 검찰총장을 교체하고 야당의 공세를 적절히 차단 했다.

그러나 그에겐 대형 사건사고를 겪고 수습한 경험이 거의 없다.

일 처리란, 지식으로 지혜로만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경험과 노하우가 알파이자 오메가인 경우가 많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1994년 10월 말 성수대표가 붕괴된 다음날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경질하고 최병렬 의원을 임명했다.

언론사 편집국장과 정무수석, 노동부 장관, 국회의원으로서의 풍부한 대형 사건·사고 경험과 노하우를 높이 산 선택이었다.

최병렬 시장은 실제로 서울시장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고 서울시민의 무너진 민심을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대가 인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른 인물이 필요하다는 건 역사의 가르침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울부짖고, 전 국민이 멘붕에 빠져 있으며, 전 세계로부터 조롱거리 같은 후진국형 참사를 겪었는데도 권한도 없는 총리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 남재준 원장도 마찬가지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책임도 정홍원 총리 못지 않다.

남 원장이 세월호 참사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정원장은 안전과 대형 사건·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당연히 책임도 없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영역은 대북한 정보에서부터 시작해 국정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다.

사찰을 하지 말라고 했지, 국정원이 정부 부처의 문제점과 관련된 정보를, 국정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국정원의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국정원 직원(정보수집원, IO)들이 해수부와 경찰, 해경 등을 출입하며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본적인 임무"라고 말했다.

대북한 문제와 간첩 등 공안사건만 전담한다면 국가정보원이라고 할 필요가 없이 '국가 방첩원'이라고 명명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남재준 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바로 직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여당 내에서조차 남재준 국정원장은 세월호 참사 뒤에 숨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시중엔 세월호 참사로 가장 덕을 본 사람은 단 한사람, 남재준 원장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비록 드라마일망정 201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한석규 분)은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라며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지금은 분명 왕조시대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 시대다.

대통령 중심제하의 2인자인 총리도 이를 의식해 "정부를 대표하여 사과드린다. 국무총리로서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 정 총리뿐이겠는가. 또 책임 문제만도 아니다. 사고 수습과 민심 수습의 문제다.

한 발짝이라도 전진하기 위한, 국가 대 개조를 위한, 국정의 혁신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절실하다.

시대에 맞지 않은 사람, 역할을 마친 사람, 민심을 거슬려온 고위 공직자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역사의 순리다. 임명권자가 극구 만류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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