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이 빚어낸 세월의 걸작…지구별 속 시간여행

80만년 자연의 신비 품은 수천 겹 지층…걸음마다 역사 문화의흔적 오롯이

역사·문화 해설사가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 탐방객들에게 지질과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80만년 지구의 시간을 품은 '지구의 지문', 제주도 유네스코 지질공원 브랜드를 활용한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가 지난 5일 드디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지난 2011년 고산 수월봉 일대 지질자원을 활용한 지질트레일 코스가 생긴 이래 두 번째로 개발된 코스다. 수월봉 지질트레일이 수천 겹의 지층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면,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은 이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익숙하던 명소도 새로운 시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제주도 땅을 만지고 느끼고 이해하다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특히, 이곳 핵심지질명소인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속한 안덕면 사계리·화순리·덕수리는 오랜 억겁의 시간이 흐른 지질명소가 있는 지역인 만큼, 신화·전설·역사·민속 등 문화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지구의 지문이라 할 수 있는 지질이야기와 마을이야기를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역사문화지질트레일이란 테마를 갖추게 됐다.

이번 지질 트레일 코스는 코스가 2개다. 용머리 해안 앞을 포함해 형제섬, 송악상, 하모리층 등을 둘러 볼 수 있는 14.5㎞ A코스와 화순 곶자왈과 금모래 해변을 포함한 15.6㎞ B코스 등으로 구성됐다. 짧은 탐방을 원하는 탐방객을 위해 A코스에 10.7km의 단축코스도 만들었다. 정식코스명은 탐방객을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란다. 출발은 용머리해안에서 시작한다.
 
지난 5일 일반인에게 공개된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는 총 2개의 코스로 구성 됐으며, 출발은 용머리해안에서 시작된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 용머리해안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머리해안이다. 산방산 앞쪽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뒤통수가 보인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해안으로 내려가 화려한 지층을 가까이 관찰할 때 드러난다. 휘몰아쳐 흐르는 듯한 지층은 해외 다른 지형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답다. 용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멜기념비'가 있으며 용머리를 관광하는 데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용머리해안의 놀라운 지층은 바닷속에서 불출한 용암으로 생긴 화산재가 오랫동안 쌓이면서 생긴 것이다. 세 군데 분출구의 화산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다가 굳어서 더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낸다. 발길 닿는 족족 그 자체로 지적 유희를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 연인들이 산방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산방산

약 80만년 전 용암이 쌓이면서 생긴 산이다. 워낙 오래된 지형이라 재미있는 이야기도 세월을 타고 전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봉긋하게 솟은 모양 때문에 한라산 백록담에 있던 봉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 올라갔다 실수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화살로 맞추고 말았고, 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높이가 395미터에 달하는 산방산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으려면 용머리해안 입구 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워낙 크기도 크고 옆모습과 뒷모습도 아름다워서, 멀리서 차를 타고 달려오면서 다각도로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 설쿰바당·누룩빌레 그리고 사람발자국화석

이곳은 눈이 쌓여도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구멍이 생기는데, 눈 속에 생긴 구멍이란 의미로 '설혈'이라 했으며 이후 '설쿰'으로 변형됐다. 용해동 큰물 동쪽 설쿰 일대에 형성된 동네를 설쿰동네라 부르고, 바다를 바당이라 부르며 이곳의 해안을 설쿰바당이라 했다.

설쿰바당을 지나 사계포구 가는 해안을 걷다보면 누런 빛깔의 알갱이가 오밀조밀하게 뭉쳐진 암석덩어리들이 해안에 펼쳐져 있다. 하모리층과 그위를 덥고 있는 해빈모래다. 암석 모습이 누룩과 같다해 제주에서는 누룩돌 혹은 누룩빌레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웅덩이에 고인 바닷물을 따로 저장해 장을 담글 때 이용하거나 솥에다가 삶아 소금을 만들기도 했다.

길게 이어진 사계리포구 해안으로 들어갈 수없는 울타리가 보인다. 지난 2003년 발견된 사람발자국화석 때문이다. 길이 21~25cm가량이며 발뒤꿈치 중간호, 앞꿈치의 특징이 잘드러나 있다. 화석지대를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지만 화석발자국 안내소에 들러 전시된 유물과 사진을 확인해 볼수 있다.

용해동 큰물 동쪽 설쿰 일대에 형성된 동네를 설쿰동네라 부르고, 바다를 바당이라 부르며 이곳의 해안을 설쿰바당이라 했다. 누룩빌레 넘어로 형제섬이 보인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형제섬

사계포구에서부터 송악산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에 옆으로 보이는 바다와 형제섬의 조화는 으뜸이다. 멀리 보이는 두개의 섬은 사실 하나였는데 18세기 말 가운데 부분의 바위가 무너지며 두개의 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형제섬에서 전해지는 전설중에는 두마리의 용의 거친 결투이야기가 나름 타당하게 들린다. 조선 숙종 3년(1712년) 용 두마리가 형제섬 앞바다에서 싸움을 벌였고, 주변에 해일과 태풍이 몰아쳐 섬 앞바다인 사계리 일대가 막대한 피해을 입었다고 한다.


사계리 포구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크고 작은 섬이 마치 형제처럼 마주하며 떠 있다. 길고 큰섬을 본섬, 작은섬은 옷섬이라 불렀다.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으며 옷섬에는 주상절리층이 일품이다.

바다에 잠겨있다가 썰물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섬과 암초들이 있어서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갯수가 3~8개로, 그 모양도 마치 착각처럼 변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일출·일몰때 사진촬영 장소와 최고의 낚시포인트로도 유명하다. 형제섬의 수중아치는 다이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제주 유일의 뾰족산인 단산 인근 유채꽃밭, 바람결에 출렁일 때면 샛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마늘 줄기가 조화를 이뤄 대장관을 연출한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단산과 추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도는 지질트레일 코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제주 오름의 이단아로도 불리는 '단산'이 그곳이다. 제주 오름은 대부분 둥그스름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반면 '단산(높이 158m, 둘레 2566m)'은 모양새가 좀 다르다. 거칠고 사나운 생김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주 유일의 뽀족산이기 때문이다. 오르고 내리는데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제주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자신의 심정을 묘사한 국보 180호 세한도를 완성했다고 한다. 단산은 최근 추사 유배길 1코스(집념의 길)에 포함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제주 토박들은 단산을 '바굼지오름'으로도 부른다. '바굼지'는 바구니를 일컫는 제주토착어. 옛날 제주 들녘이 물에 잠겼을 때 오름이 바굼지만큼만 물 위로 보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지금의 이름인 '단산'은 1900년대 이후 부르기 시작했다. 또 오름의 형세가 박쥐를 닮아 '바구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후 '바굼지'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단산은 서쪽 절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거나, 대정향교 옆으로도 오를 수 있다.

추사가 유배생활을 할때 대정향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뒤로는 단산이 보인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대정향교와 세미물

조선시대 위리안치명을 받고 유배 온 김정희는 9년간 그가 남긴 흔적들이 옛고을 대정에 오롯이 남아있다. 비좁은 초가집에 머물며 추사체라는 최고의 글씨를 완성했다. 단산을 뒷배경 삼아 자리잡고 있는 대정향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역사적인 장소다. 추사가 유배생활을 할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숙사인 동재의 현판 '의문장'의 현판글씨는 추사의 친필 작품으로 현재 '제주추사관'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 대정향교 옆 석천이라 불리는 세미물은 차를 즐겨마셨던 추사가 이곳의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며 유배 생활을 보냈다. 유배가 끝나고 돌아간 후에는 석천의 물소리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져 온다.

'나무와 덩굴 따위가 돌과 마구 엉클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제주토박이말이 곶자왈이다. 화순곶자왈은 병악(골른오름) 용암류로 해발 492m인 병악(골른오름)에서 시작돼 화순리 방향으로 총 9km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평균 1.5km의 폭으로 산방산근처의 해안지역까지 이어지고 있다. 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화순곶자왈

제주에는 '곶자왈'이라 부르는 지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무와 덩굴 따위가 돌과 마구 엉클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제주토박이말이 곶자왈이다. 곶자왈엔 화산분출시 점성이 높은 용암이 작은 함몰과 융기 지형을 이루며 쌓여 있다. 지하수를 품고 있으며 보온·보습효과를 일으켜 남방계식물이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과 북방계식물이 살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공존하는 세계유일의 독특한 숲을 이룬다.

화순곶자왈은 병악(골른오름) 용암류로 해발 492m인 병악(골른오름)에서 시작돼 화순리 방향으로 총 9km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평균 1.5km의 폭으로 산방산근처의 해안지역까지 이어지고 있다. 멸종위기 식물이 개가시나무, 새우난, 더구사리고사리와 세계적 희귀종인 긴꼬리딱새, 제주휘파람새 등 50여종의 동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화순곶자왈의 탐방로는 일제강점 말기 일본군 시설의 연결 도로를 탐방로로 개설해 놓았다 한다. 숲의 고요함,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발자국 소리에 집중해 걷게된다.
 
<찾아가는 길>
▲A코스(14.5km, 약 4시간)는 사계리와 덕수리 마을을 경유하는 14.5km의 코스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 불리는 형제섬 해안도로를 따라 하모리층과 사람발자국 화석, 덕수리의 아름다운 돌담길과 불미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지질학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문화와 역사, 전설, 생태 등의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다.

(용머리해안 주차장→설쿰바당→사계포구→형제해안로전망대→해안사구와 하모리층→사계리해안체육공원→사람발자국화석→대정향교→세미물→단산→정상→칼날바위→단축코스분기점→산방산탄산온천→불미마당→베리돌아진밭→조면암 산담→산방산 주차장→용머리해안 주차장)

▲B코스(14.4km, 약 4시간 30분)는 사계리, 화순리, 덕수리를 모두 아우르는 총길이 14.4km의 코스다. 산방산에서 화순리방향으로 펼쳐진 금모래 해변과 제주 생태의 보고인 화순곶자왈을 비롯, 과거 논농사를 짓기 위한 수로와 과거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금막 등 척박한 제주의 환경 속에서 지혜를 짜내며 살아온 제주인들의 문화를 만나볼 수 있는 코스다.

(용머리해안 주차장→황개천/명알목소→개끄리민소→수로/퍼물→곤물/곤물동→화순곶자왈→방사탑→홈밭동네전망대→군물→베리돌아진밧→조면암산담→산방산주차장→산방연대→용머리해안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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