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민 씨랜드 유족 "왜 변한게 없나요"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진행 : 김순덕 (뉴질랜드 거주, 씨랜드 유족)

1999년 씨랜드 사건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한 청소년 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당시 그곳에서 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4명이 희생을 당한 사건이죠. 총체적인 인재였다는 점. 또 어린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점에서 이번 세월호 참사와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만날 분은 씨랜드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분인데요. 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오늘 초대를 했습니다. 이분은 당시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에 나라에서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이민을 떠났습니다. 전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 김순덕 씨 연결을 해 보죠. 김순덕 선생님 나와 계십니까?

◆ 김순덕>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지금 뉴질랜드에 사신다고요?

◆ 김순덕> 네네.

◇ 김현정> 이제 가신 지가 얼마나 된 거죠?

◆ 김순덕> 한 15년 넘었습니다.

◇ 김현정> 15년 넘으셨죠. 씨랜드 사건이 난 후에 1년 만에 떠나셨어요. 그런데 떠나시면서 아예 국가에서 받은 훈장까지 반납을 하고 떠나셨습니다. 그건 왜 그러셨을까요?

◆ 김순덕> 모든 부모님들이 아마 저와 똑같은 심정일 겁니다. 저희 아이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종결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저희 아이한테 해 준 게 하나도 없어서 해줄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래서 훈장을 반납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그때 씨랜드 사건이 제대로 처리가 안 되었던가요? 제가 그때 기억하기로는 모기향을 잘못 피워서 불이 옮겨붙었다. 이렇게 원인이 파악이 됐던 걸로, 그렇게 마무리가 됐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 김순덕> 맞습니다. 모든 국민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시죠. 그런데 저희도 여러 모로 조사를 해 봤고 또 실험도 많이 해 봤습니다. 하지만 모기향으로는 불이 붙지가 않습니다. 저희는 재차 총리님께 정확한 사유를 밝혀달라고 말씀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유족 분들하고 생각하는 거리가 많이 멀었죠.

◇ 김현정>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사건이 종결되고 답답한 마음에 더 이상 살기가 이 나라에서는 어렵겠구나, 결심하신 거예요?

◆ 김순덕> 사실은 저희 부모들이 빨리 결정하게 된 계기가 그 당시에 저희 아이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신이 부패가 된다 하니 부모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 김현정> 그러셨군요. 그렇게 15년이 지나서 2014년 봄이 됐는데 세월호 침몰사건이라는 게 또 터졌습니다...

◆ 김순덕> 마음이 너무 아파요.

◇ 김현정> 이 뉴스를 뉴질랜드에서 보시고는 정말 어떠셨을까요?

◆ 김순덕> 아침에 저희가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한국에서 뉴스에 속보가 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순간 얼굴만 바라보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넋 놓고 보고만 있었어요. 그러고 난 다음부터는 저희 다 멘붕이죠.

◇ 김현정> 정신 차릴 수 없는 상황.

◆ 김순덕> 네.

◇ 김현정> 예전 기억까지 다 나시는 거죠, 지금 그러니까?

◆ 김순덕> 그렇죠. 그 부모님들 저희와 똑같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까. 그리고 또 저희도 똑같은 그 15년 전의 그 상황으로 다시 가서 똑같이 겪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래서 사실은 서울에서 전화 받는 게 무서워요.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 임시 합동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사진=황진환 기자)

◇ 김현정> 전화 받는 게 무서울 정도로.. 아니 선생님, 15년 지났잖아요, 15년. 혹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픈 겁니까?

◆ 김순덕> 가슴에 묻는다는 말 아시죠? 물론 그때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두렵고 무섭고 그리고 너무 아프고.


◇ 김현정> 너무 아프고.

◆ 김순덕> 주위에서 보는 분들은 제가 웃고 있으니까 지금 잘 지내시나 보다 생각하세요. 그런데 요즘 세월호 사건 때문에 저희 부부는 계속 술 마시면서 울면서...

◇ 김현정> 그렇게 버티시면서... 15년을 쭉 돌아보면 어떤 때가 제일 힘드시던가요?

◆ 김순덕> 이렇게 사고가 날 때마다 저희는 많이 힘들고요. 그리고 아기 아빠랑 저랑 한국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게 너무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그리고 우리 도연이 또래 애들 볼 때, 우리 아이도 저만큼 컸겠구나 하는데 제 기억 속에는 6살짜리로 있다는 거예요.

◇ 김현정> 15년이면 이제 성인이 됐을 나이인데. 그 정도 또래 대학생들 보면 너무 힘드신 거죠?

◆ 김순덕> 네. 지금 세월호 가족 분들도 너무 너무나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클 겁니다.

◇ 김현정> 오히려 지금은, 지금은 좀 비현실적인 상황 같아서 지금은 오히려 그나마 버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더 힘들어지실 수도 있나요, 이게 상황 정리가 되고 나면?

◆ 김순덕> 맞죠. 지금 상황은 너무나 살아 있을 것 같은 그 착각 속에 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저희가 아픈지도 몰랐어요, 사실은. 그런데 지나면 지날수록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아이의 빈자리가 너무 너무 크고.

◇ 김현정> 혹시 지금 사고가 다 수습된 것은 아닙니다마는 이 사고 수습과정, 대처과정 보면서도 예전을 떠올리게 되세요?

◆ 김순덕> 저희 유족 분들과 통화를 했는데 저희 때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이 변한 게 없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서울에 계신 분들이.

◇ 김현정> 씨랜드 때 희생당했던 그 유족 분들하고 이번에 통화를 해 보셨어요?

◆ 김순덕> 네.

◇ 김현정> 선생님, 김순덕 씨.

◆ 김순덕> 네.

◇ 김현정> 저희한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은 세월호 가족들이 제일 걱정이 된다. 희생자 가족들이 제일 걱정된다고 하셨는데. 어떤 말씀, 어떤 부분을 꼭 알리고 싶으셨던 걸까요?

◆ 김순덕> 실종자 가족 분들과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정말 실망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을 거예요. 그분들을 정말 일으켜 세워주실 분들은 국민들밖에 없습니다. 사고처리를 잘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정말 다 지켜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힘이 되어 줘야 됩니다. 그 일이 다름 아닌 다 우리들 일이니까요.

◇ 김현정> 그럼요. 15년 전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게 이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국민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 희생자 가족들께 꼭 드리고 말씀이 있다고 이렇게 그 멀리서 용기 내 주신 것 제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김순덕>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씨랜드 사건으로 아이를 잃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지 15년 된 분이십니다. 김순덕 씨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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