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눈물 흘리는 엄마들…시간이 멈춘 대한민국

'절망'의 대한민국…'희망'은 어디에?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은 지금 시간이 멈췄다.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어 멈춰진 시간 속에 하나의 기류가 전국 곳곳을 관통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과 구조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개탄, 여기서 파생된 사회 곳곳의 ‘집단적 무력감’, 그 속에서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삶의 의지.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마음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이다. CBS가 전국 곳곳의 민심을 들어봤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여드레째인 23일 오후 전남 진도항에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묶여 있다. 윤성호기자

◈침몰 9일째, 더 커지는 ‘슬픔’

세월호가 침몰한지 24일로 9일째이지만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서 스러져간 아들 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슬픔과 비통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숨진 단원고 학생들이 살았던 안산은 물론 서울 경기 대전 부산 제주 등 전국이 한결같았다.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향했던 제주도의 김정순(86세) 할머니는 “학생들이 배 안에서 헤매다가 죽어 갔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비통하다”며 “물은 차오르고 배는 가라앉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멀리서 지켜만 보는 사람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주시 주부 김유정(48세)씨는 “사고 소식을 전하는 TV를 보면 눈물만 나와 이젠 TV도 보지 않는다”며 “같은 부모 심정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파 밥을 먹다 체할 정도”라고 말했고, 자영업자 양승세(51세)씨는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내 자식 또래인데 남 일 같지 않아 너무 가슴이 아프고 눈물만 난다”며 “사고 순간 가족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농번기를 맞았지만 도통 일이 잡히지 않아 논에 나가지 않았다”는 전북의 농민 김모(75세)할머니, “사고 소식을 접하고 심란해서 중간 고사기간이지만 공부가 안된다”는 고등학교 2학년생 서현정양, “배가 침몰하고 결국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는 가정주부 유윤미(39)씨, “애도 분위기 속에 매출이 줄어 걱정이기는 하지만, 사고 당사자와 도대체 바뀔 것 같지 않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더 걱정”이라는 자영업자 이시현(36)씨 등 세월호 참사를 보고 느꼈던 ‘비통함과 기막힘’은 지역과 남녀 연령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 심지어 세월호 참사로 학교 동문을 잃은 슬픔도 맘껏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주 신흥고는 지난 21일 세월호 침몰 당시 제자들을 대피시키려다 목숨을 잃은 학교 동문 안산 단원고 고 남윤철 교사를 추모하는 묵념 행사를 진행하려다 무기한 연기했다.

“실종자 수색이 아직도 진행되는 상황에서 자칫 추모행사에 대한 안팎의 지나친 관심이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는 것이 신흥고측의 설명이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8일째인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 임시 합동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눈믈을 흘리고 있다. 황진환기자

◈정부 언론 불신, “신뢰가 무너져 더는 믿을 수 없다”

비통함 속에 재난을 막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극심했다.

전북의 직장인 송기중(48세)씨는 “재난이 반복되고 있지만, 재난에 대응하는 부분에 변화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고, 제주도의 나숙희(70세)씨는 “다른 나라를 보면 지휘체계가 단일화돼서 허점이 없는데, 이번 사고에서 우리나라는 각 기관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사고에 조속히 대처하기는커녕 하는 척만 하는 것 같았다. 제발 앞으로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제주도의 중학교 3학년 김수민양의 의견였다.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숨졌다는 점에서 특히 전국 ‘엄마들’의 분노가 컸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 부장(여성, 43세)은 “사무실에서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 숨진 학생 부모들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이 많다”며 “살아있음이 그저 고마워 요즘 학교 다녀오는 아이들을 새삼 꼭 안아주는 엄마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 보도로 희생자들을 두 번 죽였다”며 언론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울산의 윤경희(54)씨는 “어루만져주지도 못할거면서 긴장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언론이 계속 할켰다”며 “언론들이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원인으로 화물적재 불량과 선박 개조 등이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대검찰청에서 전국의 여객선들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다. 23일 오후 인천 연안여객항에서는 인천지검이 해경 및 기타 주관부처와 함께 선박의 안전과 관련법규 준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국민전체가 트라우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비판 속에 집단적 무기력 증세가 확산되는 것도 확인된다. 평소라면 떠들썩했을 춘계 등산대회나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외식이나 쇼핑, 여행, 극장 관람은 물론 음악을 듣는 것조차 감소하고 있다. 국민들의 대외활동 자체가 감소하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려는 자숙의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지만, 정부가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그대로 노출한 무능력과 무기력이 사회 곳곳의 활동 의지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심리적 무기력’의 확산인 셈이다.

“사람이 나와야지 생선을 사든 말든 할텐데 아예 외출 자체를 자제하면서 인적조차 뜸하다”는 것이 전남의 한 시장 상인의 말이다. 전남 상공회의소 관계자도 “세월호 참사 이후 업체 회식도 대부분 취소하는 상황이고 삼삼오오 모임이나 회식을 할 의욕조차 잃은 분통하고 참담한 분위기”고 말했다.

각종 행사와 회식이 취소되다 보니 대전의 백화점 업계에서는 구이용 돼지고기 판매가 30%가량 줄었다. 경북은 다음 달 9일부터 열기로 했던 경북도민체전을 무기 연기했다.

이처럼 대외활동 자체가 위축되는 분위기 속에 4월에서 5월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의 ‘관광 경기’도 실종될 공산이 크다.

다음 달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부산의 직장인 허민성(38.여)씨는 “오랜 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인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수학 여행을 추억을 만들려는 학생 수백명이 숨졌는데 어떻게 우리 가족끼리 웃으면서 즐길 수 있냐”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부산-제주, 부산-후쿠오카 등 대형 페리의 예약 취소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부산 여행사 관계자는 “원래 5월 초는 1년 중 가장 성수기인데 올해는 황금연휴까지 겹쳐서 두 달전에 모든 상품 예약이 끝났다”며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나이트 투어, 갈라쇼 등이 포함돼 있는 상품은 예약 취소 문의가 늘어 지금까지 약 10% 가량 취소됐다”고 말했다.

초중고생 수학여행에 각종 현장 체험 학습이 모두 취소되면서 중소 여행사들은 발발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 경기’도 마찬가지이다. 전남지역 한 지자체장 선거 캠프 관계자는 “예전처럼 거리로 나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그저 선거 사무소에서 지인들에게 전화 형식으로 안부나 묻는 수준에서 선거운동 아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런 침체 분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회 곳곳의 무기력이 각종 대외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이것이 다시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악순환이 우려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자칫 심각한 내수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며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일주일째인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 기원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로 '미안하다' 라는 글귀를 만들고 있다. 황진환기자

◈총체적 부실, 희망은 어디에?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니? 어떤 과목을 좋아했는지, 무슨 색깔을 좋아했는지, 궁금하구나.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노란 리본을 메고, 촛불을 밝히는 것밖에 없구나. 그래도 우리는 기다린다. 희망을 놓을 수 없다.”(부산지역 참교육학부모회 23일 부산역 촛불 기도회 발언)

절망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 속에 나라 전체가 역설적으로 하나의 마음이 되고 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진도 현장에서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전국 곳곳에서의 물품 지원과 모금에 이어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돕기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진도 사고 현장에 모여든 것처럼, 노란 리본을 달아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는 마음은 인터넷과 SNS, 안산 단원고 와 안산 중앙역 등 안산 일대를 넘어 부산역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물며 어린이집 원생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대전의 한 어린이집 원생들은 최근 고사리 손으로 쓴 무사귀환 기원 팻말 등을 담장에 걸었다. 노란리본을 담장에 일일이 묶어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배가 바다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마음 한 뜻으로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팻말과 리본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다는 마음은 대한민국의 질적 전환을 촉구하는 마음이다.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 외적인 경제 성장에 걸맞게 어떤 상황에서라도 국민들을 시스템적으로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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