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이중고에 시달리는 생존 교사들 "모른 척하는게 도와주는 것"

'생존자 증후군'에 '죄책감'까지 더해져

단원고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단원고 실종자가족 대기실이 마련된 4층 강당이 술렁이고 있다. (민구홍 PD)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주일을 넘기면서 수습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도 부모형제자매를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생존자들과 구조대원들까지 지쳐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분노와 무력감, 우울함 등 심리적 고통이다. 특히 대형사건사고로 인한 심리적 충격은 십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아 장기치료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CBS노컷뉴스는 세월호 참사로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충격의 실상과 지원방안을 집중취재한다. [편집자 주]


"200여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구조된 단원고 교사들의 심적 고통은 그 누구보다 깊다. 지난 18일 침몰한 여객선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 강 모(52) 교감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번 수학여행에 함께 한 교사는 강 교감을 포함해 14명. 23일 현재 이들 중 생사가 확인된 교사는 6명. 당초 생존자는 3명이었지만 강 교감이 운명을 달리하면서 그마저도 2명으로 줄었다.

살아남은 교사들은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른바 생존자 증후군(Survivor’s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는 것.

생존자 증후군은 지나친 경쟁이나 자연재해 및 재난 상황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를 잃고 살아남은 이들이 보이는 심리 상태의 일종으로 죄책감, 악몽 등 수면장애, 대인기피, 좌절감 및 우울감 등 부정적 반응을 동반한다.

실제로 구조된 학생 70여명과 사고 당일인 16일 밤부터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이 모 교사는 '생존 학생, 부모들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19일 새벽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

또 다른 생존 교사인 김 모 교사 역시 안산시가 아닌 인근 다른 지역 병원으로 입원했다.

두 사람은 모두 정신적 충격이 큰 탓에 스트레스와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언론 등을 통해 실종 학생·교사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심각한 자괴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들 교사들은 외부와 접촉이 전면 차단된 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있다.

김 교사를 치료하고 있는 한 의료진은 "현재로서는 모른 척 해주는 게 그분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서 어떠한 말도 그분들에겐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16일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비통해 하고 있다. 뒤로 구조된 안산단원고 학생들이 모포를 걸친채 안정을 취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살아남은 교사들의 이중고…"똑같은 피해자로 보호해야"

'세월호 트라우마'는 그 누구보다도 이들, 살아남은 교사들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된 교사들의 경우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교사로서의 책임을 져버렸다는 자존감 붕괴가 더해져 이중 삼중의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살아 남았다는 것만으로 사망했거나 실종된 학생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선생님들은 교사로서의 책임감까지 더해져 심한 자책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사는 평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직업인데, 이번 사고로 피해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그런 존경심이 박탈됐다고 느끼게 된다면 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전문가들은 구조된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절체절명의 대형 재난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죄인이 아닌 똑같은 피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로 인정받기 보다는 교사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듯한 느낌에서 오는 충격과 이로 인한 교사로서의 정체성 혼란이 추가로 올 수 있다"며 "우선 교사들도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그분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과 교수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과 학생들을 구하지 못하고 나왔다는 죄책감만 해도 한 사람이 견뎌내기 힘들 정도의 굉장한 스트레스"라며 "죄책감을 자극하는 말은 절대 금물이며, 교사들도 똑같은 피해자로서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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