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3년째 일하는 ㄱ씨는 그동안 실제로 평일 9시간, 주말에는 11시간 동안 서서 일했다. 의사는 ''''절대 다리를 혹사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지만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대안이 없다.
백화점 화장품 판매대에서 일하는 ㄴ씨(23·여) 역시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일한다. 사규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잠시라도 의자에 앉을 수 없다. 그는 ''''회사에서 서비스를 워낙 중시하니까 앉는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서 일하는 근로자들''''. 유통업체 계산원과 판매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루 8~11시간을 서서 일하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지난해부터 200일 넘게 장기농성을 벌이며 비정규직의 상징이 돼버린 이랜드·홈에버 여성 근로자들도 해고되기 전까지 하루종일 계산대 앞에 서서 일했다.
서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화장실도 맘 놓고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유명 할인점에서 일하는 계산원 ㄷ씨(43·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서 화장실은 점심시간에 딱 1번 간다.
그는 ''''계산대 앞에 손님은 밀려있고 화장실은 먼데 자꾸 자리를 비우면 근무태도가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월경 기간에 겪는 고통은 더욱 크다. 그는 ''''여직원들 대부분이 월경 때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해 난처한 일을 겪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 할인점 계산대에서 15일 여직원들이 선 채로 고객들의 물건 값을 계산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이 할인점의 여성 직원은 모두 300명. 그러나 직원용 화장실은 매장에 한 군데 4칸이 전부다. 중간에 ''''일''''을 보고 와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퇴근할 때 정산이 틀리면 무조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을 위한 의자나 휴게실 설치는 사용자의 의무다.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무리하게 서서 일한 대가는 ''''몸''''으로 나타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유통·서비스업계 근로자 14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 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허리 질환(58.4%), 산부인과 질환(52.7%)을 앓고 있었다.
혈관계 질환(하지정맥류·47.4%), 비뇨기과 질환(방광염 등·39.6%) 등으로 고통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질병은 노동부가 인정하는 직업병에 등록돼 있지 않다. 당연히 산재 처리를 받기도 어렵다. 계산원 ㅁ씨(36·여)는 일한 지 2년 반쯤 지났을 때 왼쪽 어깨 안쪽 근육이 찢어지고 물이 찼다.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계산대 컨베이어 벨트에서 장시간 일하다보니 생긴 후유증이었다. 회사에 얘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리는 괜찮으니 그냥 일하라''''라는 것이었다. 계산원 ㅅ씨(43·여)는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지만 회사는 산재도, 휴직도 허락하지 않고 대신 화장품 매장으로 보냈다. 그는 ''''그곳도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것은 같은데 회사에서는 마치 특혜를 베풀듯 얘기하더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김신범 책임연구원은 ''''노동자에게 근성을 요구하는 개발시대의 노동문화가 유통·서비스업계 노동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면서 ''''유통업체 직원 대부분이 비정규직 여성으로 사회적 약자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노동계는 서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실태파악에 착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민주노총 등과 함께 서서 일하는 근로자의 전체 규모와 근무 실태와 임금 및 처우, 각종 질병 실태 등에 대해 종합보고서를 내고, 대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