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들 사이에선 진리처럼 통하는 격언이다.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선배생도가 후배생도들을 교육시킬 때마다 종종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훈련 때 다양한 한계 상황, 위급 상황을 충분히 겪어봐야 실전에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 위 고립된 선상에서 수십·수백명의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지휘관에게 빠른 판단력과 강한 정신력은 실무지식 이상으로 꼭 필요한 덕목이다.
운항중인 배에서 선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다.
고립된 공간에서 위급한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권을 갖고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원양·근해 또는 연해 구역을 항해하는 총톤수 20t 이상인 선박의 선장은 선내에서 발생한 주요 범죄에 대해 사법 경찰관으로서의 범죄 수사, 범인 체포 등을 할 수 있다.
또, 시신을 수장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만큼 강한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한 의무도 뒤따른다.
당연히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불문율이 국적을 떠나 전 세계 뱃사람들 사이에선 자랑스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당시 62세)은 어린이와 여성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면서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승객들에게는 공포탄까지 쏘며 질서를 유지시켰다.
특히,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말은 너무도 유명해 사후 그의 동상에 새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뱃사람'의 오랜 전통과 자부심이 세월호 이준석(68) 선장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순간에 뭉개졌다.
이 선장은 사고 발생 당시 적절한 명령을 못 내렸을 뿐 아니라 승객들을 사지에 남겨둔 채 자신만 일찌감치 탈출해 버렸다.
사고의 심각성 정도를 누구보다 먼저 인지할 수 있는 위치와 직위에 있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방기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이 분개하고 있고, 그에 대한 단죄 여론이 들끓고 있다.
뉴욕타임즈(NYT)를 비롯한 외신들마저 "공포에 질린 수백명의 승객을 배에 두고 맨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져버렸다"고 비판할 정도다.
이 선장은 1977년 32살 때부터 외항선 갑판원으로 선원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년 가량 선원생활을 하다 90년대 말부터 연안 여객선 운항을 맡아 왔다.
젊은 시절부터 선원으로 출발해 선장이 될 때까지 어쩌면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가진 베테랑 뱃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실무 지식보다 위기의 순간에 지휘관인 선장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희생정신과 책임감이었다.
비록 배가 좌초돼 기록적인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같이한 스미스 선장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너무도 비교된다.
세월호 침몰과 이후 사태 전개 과정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국인답게 행동하라(Be Korean)".
언제쯤 우리는 자랑스럽게 이 말을 던질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