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9일 여수와 부산을 오가는 정기여객선 '창경호'가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풍랑에 침몰하면서 승객 229명이 익사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건조된지 20년이 넘어 낡았던 이 선박은 화물을 과적한 데다, 구명보트·구명복을 선내가 아닌 회사 창고에 방치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공식 피해기록과 달리 사망자 수가 360~500여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사고는 1970년 12월15일의 '남영호' 침몰사고다. 제주-부산간 정기여객선인 남영호는 그날 새벽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전복돼 323명(해난심판원)의 인명 피해를 냈다. 이 사고도 326명(당시 남제주군) 또는 319명(유족)으로 집계자에 따라 희생자 수에 차이가 있으며, 과적과 항해 부주의 등에 따른 인재로 분류됐다.
비교적 최근에 당한 대형 참사로는 1993년 10월 10일의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있다. 이 배는 당시 파고가 2~3m에 달하던 악천후를 무릅쓰고 전북 부안군 위도를 떠나 격포항으로 항해하다 사고를 냈다. 정원을 141명이나 초과한 362명이 탑승했고, 갑판장이 항해사 임무를 대행하는 등 무리한 항해를 강행했다. 이 사고로 숨진 이는 모두 292명이었다.
이밖에 1963년 1월18일 전남 영암 가지도 해상에서 여객선 '연호'가 침몰해 138명이 숨졌고, 4년 뒤 1월14일에는 경남 창원군 가덕도 인근에서 여객선 '한일호'가 해군 구축함과 충돌해 94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내륙에서도 안전불감증에 따른 선박 사고가 있었다. 1994년 10월24일 충북 단양군 충주호에서 '충주5호' 유람선이 엔진과열로 추정되는 화재를 내 30명이 숨졌다. 이 배도 정원초과에, 화재진압 장비 미비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