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청와대와 국정원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를 미리 예비해두고 사전에 교감을 이룬 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번 사건의 파장을 봉합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등 야당은 국정원의 국기문란사건이 검찰 수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국정원 조직을 개혁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는데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화교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34) 씨에 대한 국정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에서 대공수사팀 과장급(4급) 직원들이 벌인 날조극으로 드러나자마자 서천호 2차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서 차장에 대한 사표수리가 이뤄진 뒤 곧바로 남재준 국정원장의 입장발표가 있을 것임을 언론에 통보했고 15일 오전 내곡동 청사에서 사과 성명문을 발표했다.
검찰수사결과 발표→서천호 2차장 사표수리→박 대통령 사과→남재준 원장 사과 성명이 14일 밤부터 15일 오전까지 14시간 동안 짜여진 각본처럼 숨가쁘게 이어진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이처럼 검찰 수사결과 발표를 대비해두고 신속한 대응시나리오를 마련한 이유는 뭘까?
사정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서 차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팔목을 하나 잘리더라도 남재준 원장만은 사퇴시킬 수 없다"는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대한 남재준 원장의 충성심이 워낙 강하기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남재준 만큼 믿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장을 공백으로 놔둘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사법체계를 유린한 재판증거 조작 사건은 지난해 댓글 사건이 터진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후폭풍이 더 거세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수사과정에서 통제받지 않는 국정원의 권력 남용행위가 낱낱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원은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나 압수수색이 이뤄질 경우,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게 돼있는 '국정원법'을 방패 삼아 윗선으로 향하는 검찰 수사의 칼날을 무력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지시했지만 남 원장은 국정원법을 무기삼아 '버티기 전략'으로 일관했고 결과적으로 윗선수사를 차단시키는데 성공했다.
국정원은 또 증거조작 과정에서 위조 문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등 범죄에 국정원 예산을 사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민의 세금을 범죄에 악용한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가기관에서 사건이 터졌을때 최후의 마지노선은 외부개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정원과 청와대도 남원장이 사퇴할 경우 외부수술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검찰이 남재준 체제유지를 위해 신속하게 '꼬리 자르기'에 나서면서 남 원장의 사퇴와 국정원 개혁 논의는 또다시 실종될 위기에 몰리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정도의 국기문란사건이 터졌으면 국회를 중심으로 국정원에 대한 내·외부 통제시스템 강화를 주축으로 하는 국정원 개혁방안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남재준 국정원장이 또다시 '셀프개혁'을 내세우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