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주변도 봄이 한창입니다. 제주의 하천은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말라 버리는 건천이 대부분이지만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는 양지꽃, 뽀리뱅이, 살갈퀴, 꽃마리가 그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름도 재미있는 지칭개입니다. 뽀리뱅이나 냉이처럼 땅바닥에 잎을 바짝 붙이고 겨울을 나더니 서서히 줄기를 세우고 잎을 들어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지칭개는 키가 작은 냉이처럼 빨리 꽃대를 내고 꽃을 피우는 법이 없습니다. 이른 봄에는 곤충들이 활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찍 꽃을 피워봐야 키가 큰 지칭개에게는 꽃가루받이에 별로 유리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지칭개는 잎을 충분히 키워서 양분을 한껏 보충하고 난 다음 느긋하게 꽃대를 올리고 곤충들의 활동이 활발한 때를 기다려 꽃을 피웁니다.
지칭개는 길가의 풀밭이나 하천 주변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꽃으로 제주도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키가 큰 것은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것도 있고 줄기는 곧게 자라는 편이며 가지가 갈라지기도 합니다. 뿌리에서 올라온 잎은 긴 타원형을 하고 있지만 둥그렇게 돌려나서 전체적으로 보면 방석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잎은 깃 모양으로 많이 갈라지고 뒷면에는 하얀색 털이 많은 것도 시선을 끕니다. 그리고 줄기에도 비교적 길쭉한 작은 잎들이 위쪽까지 계속해서 달립니다. 꽃은 제주에서는 빠르면 4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7월까지 볼 수 있는데 연한 분홍색 꽃이 가지 끝이나 줄기 끝에 위를 향해 달립니다.
지칭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지칭개는 상처 난 곳에 잎과 뿌리를 짓찧어 사용되고 으깨어 바르는 풀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짓찐개'인데 지칭개로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물이 흐르는 곳에 자라는 물칭개나물에 견주어 땅에 자란다는 의미로 지칭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칭개가 쓴맛이 나기 때문에 국을 끓이려고 여러 번 우려내다 먹기도 전에 지쳐버려 '지칭개'가 되었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일 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학명은 Hemistepa lyrata인데 속명 Hemistepa는 희랍어 '반(半)이라는 뜻의 Hemi와 '관(冠)이 있는'이라는 뜻의 stepa의 합성어로 '관모가 두 줄이지만 바깥의 것이 1/2로 매우 짧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종소명 lyrata에는 '머리가 크고 깃 모양으로 갈라진'이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잎의 제일 윗조각이 가장 크고 전체적으로 깃 모양으로 생긴 잎 때문에 붙여진 듯합니다.
지칭개도 예전에는 나물로 먹기도 했는데 잎도 크고 뿌리도 커서 몇 개체만 캐도 푸짐했습니다. 맛이 쓰기 때문에 물에 담가서 우려내면 봄철 된장국의 재료로 그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또한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리고 독기를 없애며 뭉친 것을 풀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잎과 뿌리를 찧어서 상처가 났을 때나 골절을 당했을 때 아픈 부위에 붙였습니다. 한방에서는 이호채(泥胡菜)라 하여 잎과 뿌리를 약재로 썼습니다. 여름과 가을철에 채취하여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잘 말렸다가 물에 달여 먹으면 몸속의 피를 맑게 하고 독을 풀어준다고 합니다.
제주의 오름에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봄꽃들이 피어나고 봄은 절정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아직은 겨울의 갈색 기운이 많이 남아있지만 조금 있다가 나뭇잎에 물이 오르면 초록색의 봄 느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진달래와 산철쭉이 피고 그 아래에 노란색, 붉은색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은 한라산으로 내닫습니다. 이렇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람이나 들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봄은 상상만으로도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깊어서인지 지칭개의 꽃말은 '고독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