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디바’로 이은미를 가둬둘 순 없다
“스스로 만족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데뷔 초엔 20년쯤 하면 자유롭고 겁날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아니까 더 무섭고 뭔가 아는 것 같으니까 더 두려워서 손대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아는데 확 쥐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분들이 ‘애인 있어요’의 성공을 얘기하시는데 제 일생에 그런 곡 하나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걸 먼저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은 전 세계 어떤 가수도 갖지 못한, 최고의 찬사이자 수식어다. 좋은데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신 만큼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어느 날 보니 그 별명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시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제 스스로 깨보려고 한다. 나를 구속하는 틀로 갖고 있지 말자고 생각했다”
“음악은 창조적인 작업이다.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압박감도 있지만 그걸 이겨내고 만들어냈을 때는 그보다 더 큰 쾌감이 온다. 항상 열려 있으려고 한다. 내 스스로 내 모습을 규정짓지 않아야 나를 들여다보고 끄집어 낼 수 있다. 그래야 변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걸 창조하는 사람이 안주하고 있으면 그것밖엔 못 한다”
당신을 지탱해줄 작은 위로 ‘스페로 스페레’(Spero Spere)
이은미는 지난달 27일 미니앨범 ‘스페로 스페레’를 발표했다. ‘스페로 스페레’는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마비’, ‘해피블루스’, ‘사랑이 무섭다’, ‘괜찮아요’ 그리고 타이틀곡 ‘가슴이 뛴다’ 총 5곡이 수록됐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가 ‘관심’이다. 세상이 바쁘다 보니까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다. 가족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조금 들여다 봐주고 관심을 조금씩만 가져주면 아직 희망이 있고 지탱할 큰 에너지를 꺼낼 수 있다”
“어떨 때 친구한테 하소연을 할 때 다 듣고 있다가 ‘잘 될 거야’라고 하면서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주면 고맙고 위로가 된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음악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조금 모자라면 어때. 아직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가야 할 음악적인 표현법들을 녹여내려고 했다. 무대에서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해보면 록이나 블루스, 소울에 기본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음악들로 좀 더 전진, 변화하고 싶은 게 욕심이고 그런 사운드가 녹아있다. 대중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기본은 거기에 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을 거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몫이고, 가득 들어차 숨쉬기 버겁지 않도록 편하게 했다”
이은미는 이번 앨범을 오프라인에서 먼저 발매했다. 통상 음원이 먼저 공개되고 앨범을 출시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앞서 말한 ‘위로’와도 무관하지 않다.
“내가 꿈꾸는 사운드의 서걱거림이나 공간감을 디지털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포근하고 듣기 쉽게 만드는 방법들을 고민했다. 디지털 시스템에서 사운드적인 폐해가 안타까우면 시도를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녹음했다. 그러다 보니까 꼭 음원으로 먼저 공개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면 음반 먼저 내보자고 생각했다”
이은미는 연주자와 함께 녹음을 했다.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그 녹음은 버렸다. 한 곡으로 35번이나 녹음을 반복한 적도 있다. 그래서 앨범을 들어보면 공간감이 느껴진다.
“앨범은 일단 손에 들었을 때의 뿌듯함, 디지털 방식이 가지지 못하는 포근함이 있다. 소장되지 못하고 한순간 소비되고 만다는 게 음악 하는 사람들에겐 불행한 일이다. 그래도 진심, 진정성은 변하지 않는다. 음악이 주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안 받는 거다. 난 소비하는 형태로 음악을 배워보지 못했다. 감동받고 소장하는 형태로 음악을 들어왔고 배웠기 때문에 내가 배운 방식대로 만들었다”
이은미를 살아있게 만드는 한 가지
위안과 진심이 조금 뒤로 밀렸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노래를 하는 데 안 들어준다는 것이 야속해 악에 받쳐 노래를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젠 진심을 담고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선 포기하지 못 할 게 없다. 그게 ‘이은미표 음악’이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딱 하나인 것 같다. 진심을 전하려고 하는 것. 예쁘게 노래 부르는 걸 포기했고 그러다 보니 이미지는 강하고 표독스러우며 날카롭게 돼버렸다. 진심을 담으려고 한 것이 저를 살아있게 만든 것 같다. 전달하고자 하는 진심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 그게 음악의 힘이니까”
“음악의 생명력은 들어주시는 분들이 호흡을 불어넣어 주는 거니까 언제까지 노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게 언제이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사라질 때 이 무대가 마지막인 걸 모르고 최선을 다 하지 않을까봐 그게 두렵다. 그래서 지금 관둬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대를 매번 만들려고 한다. 그게 어려운 일인 걸 알기 때문에 소중한 꿈이다. 함께 공감하고 같이 호흡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