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의 색깔이 더 짙어졌다. 그의 새 앨범 ‘디스아포라(Diaspora) : 흩어진 사람들’. ‘디스아포라’는 강제 이주자나 ‘망명’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진한 감성을 담은 전작 ‘백야’, ‘디셈버’(December)보다도 한층 더 깊고 진한 울림으로 무장했다.
“근래에 든 생각들을 담았어요. 뭔가 찾아서 떠나는, 발붙이지 못하는 주변인 혹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포근했던 공동체나 관계들이 사라지면서 삭막해진 경험들을 하게 됐어요. 주변 사람들도 말은 못하지만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부유하고, 마음은 그곳에 있으나 몸은 정착하지 못한다. 짙은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 여정은 스스로 떠나는 것인가, 타의에 의해 내몰리는 것인가. 앨범은 끊임없이 질문의 과정을 반복한다. 떠도는 이들의 고독한 내면을 투영한 5개의 트랙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실패하고 가난해져 가고 잘 안 돼가는 과정들이 많은데 그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대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멋진 패배’, ‘아름다운 실패’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우울하지만 멋진 느낌의 우울함이죠. 정신승리랄까”
짙은은 떠밀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그래도 멋지지 않았냐’ 그런 얘기를 던지고자 했다. 그래서 택한 게 ‘망명’이다. 짙은은 “수감이나 완전 추방, 출국금지 그런 것보다 망명이 정신적으로는 멋있잖아요. ‘우리끼리’ 뭉칠 수 있는 의미이기도 하고”라며 웃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1번 트랙 ‘망명’은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등 현악기의 묵직한 사운드를 통해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칫 나약해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승리를 노래했다.
‘안개’는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조금은 낭만적인 도피가 그려진다. ‘해바라기’는 록발라드로 아직은 떠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상대를 향해 갈망하는 처연함이 담겼다. ‘히어로’(Hero)는 세상 속에 갇혀 있던 나는 밖으로 이끄는 존재에 대한 찬사다.
“가사를 쓸 때 깨달음, 위안, 초월함에 대한 갈구가 있어요. 전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삶은 삭막한데 음악은 자유로울 수 있으니 이상향 또는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고민이 많고 고뇌하고 예민해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힘들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웃음) 이런 거 아닌 건 할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번 앨범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한 나와 우리의 자화상’이다.
짙은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디스아포라(Diaspora) : 흩어진 사람들’은 2014년 발매될 연작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앨범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앨범을 열 몇 곡정도로 좀 길게 가고 싶었어요. 아직 할 말이 남았거든요. 개인적인 일기 정도로 생각했고 조용히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다음 앨범은 여기서 이어진다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새로운 시각이 생기면 그런 이야기를 하겠죠”
짙은은 본인의 삶과 음악을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과 삶이 음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짙은은 “일체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어요. 감동이나 초월적인 아름다움 뭐 그런 걸 함께 느끼면 좋겠다 뭐 그런. 지금은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냥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하게 된 상태요. 음악을 할 때 제일 행복하거든요”
짙은은 하반기 새로운 앨범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