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느 쪽에 충성해야 할지 종잡지 못하고 있으며 갈수록 커지는 러시아인의 적대감을 바라보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니나 키브릭은 10일 "비극적인 상황이 닥쳤다. 내 인생은 둘로 쪼개졌으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AFP에 밝혔다.
그는 "사람들도 둘로 갈라졌으며 심리적으로는 내전이 발생한 상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키브릭은 우크라이나 동부 푸티블시에서 매년 열리는 슬라브 문화 축제 개최를 지원했으나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어권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레온티이(82)는 크림 병합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사전에 준비한 행동이었다"면서 "나와 내 러시아 친구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매우 우려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고향을 떠나 러시아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은 2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 우크라이나 근로자 300만 명이 각종 작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 소수민족 중 타타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축출되고 친서방 세력이 부상하자 러시아인 사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근 '레바다 센터'가 벌인 설문에서 우크라이나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러시아인의 비율은 지난 1월 26%에서 3월엔 37%로 높아졌다.
러시아 거주 우크라이나인 웹사이트 '코브자'를 운영하는 이고르 로즈도부드코는 "반(反) 우크라이나 감정이 러시아 사회에 주입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불행하게도 이런 반 우크라이나 선전이 러시아인 사이에서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애국자는 러시아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친(親)러시아 우크라이나인 위원회'의 부위원장 알렉세이 그리고로비치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는 "만일 명백히 극단주의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러시아인과 우크러이나인 사이엔 아무런 긴장의 위험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인 대다수는 우크라이나인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문제를 연구해 온 소바센터의 알렉산더 베르코브스키 소장은 반 우크라이나 정서와 관련한 사고가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무슨 수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구별해 낼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독립 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시킨은 지난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차별조치가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조지아 전쟁 땐 모든 조지아인이 (친서방적인) 마하일 사캬슈빌리를 지지했기 때문에 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우크라이나는 분리된 국가이고 우리 정부가 이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불가피하게 우크라이나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생겨날 것이라고는 내다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위기상황이 진전되면서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 민족적 자의식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는 양국 관계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