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비아냥'에도 '소통' 선택한 안철수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첫 최고위원회의에 안철수 공동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좌측 김한길 공동대표) 윤창원기자
2012년엔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2014년엔 ‘운석’이 될 위기에 처했다. 정치인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얘기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려는 것도 무리였고, 기초선거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는 것을 '새 정치'로 이름 붙여 관철하려 한 것도 현실 정치와는 괴리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던진 회동 제안이 거절당하자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결단력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라기엔 어딘지 모르게 좀 부족해 보인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연결고리로 신당 창당을 선언한 뒤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더니 갑자기 유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보수 언론은 이때다 싶게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安, 또 철수?>(조선일보 1면 제목), <안철수 네 번째 ‘철수 정치’>(중앙 1면), <無 공천...安, 철수>(동아 1면) 제목은 비판이 아니라 차라리 비아냥거림 그 자체다.

전문 분야에서 이룬 혁혁한 성과에, 바른 생활 교과서 같은 삶을 살아온 안철수 대표를 빗댄 ‘철~수’(물러나다는 뜻) 얘기가 시중에 회자된 지 오래다. 지식인들과 정치에 관심 있는 대중들 사이엔 조롱거리로 전락한 듯도 하다.

안 대표가 지난 3월 2일 “불(不)공천 결단은 약속을 지키려는 정치의 첫걸음”이라며 어떤 난관에도 밀고 갈 듯이 공언했으니 식언의 정치인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정치인은 현실 정치 속에서 한 순간, 한 순간을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 아닌가.

끊임없이 새 정치를 갈망하며 그에 걸맞는 이상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각고의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면 정치적 자산도 쌓이리라 여겨야 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었다. 박근혜 현 대통령도 '원칙과 약속'의 정치를 내걸었지만, 따지고 보면 권력을 쥔 뒤엔 지키지 못한 약속도 많았다.

안철수 대표가 당내 반발과 청와대 및 새누리당의 거절, 보수 언론의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無)공천'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걸 지금은 탓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4년 뒤인 2018년 지방선거부터 전격 도입될 지 역시 아무도 알 수 없다. 최소한 2022년엔 반드시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갈 것이라 본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다음 지방선거(2018년) 때는 아마도 무공천으로 갈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모 의원은 “안 대표가 막다른 골목에서 내린 결정이자, 국민과 당원에게 공을 넘긴 결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같은 당의 또다른 재선 의원은 “여론조사로 당론을 결정하는 것은 좀 그렇다. 정치 지도자란 방향을 정하고 대중을 설득해 끌고 가는 것 아니냐”며 “안 대표가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안철수 대표가 무공천 여부에 대한 결단을 내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당원과 국민께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주도적 결정으로 밀어붙였으면 '결단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쉬움이 남는다”는 견해도 있다.

안 대표가 만약 공천 결단이든, 무공천 결정이든, 어떤 선택을 했다면 당내 분란은 더 심화될 수 있었다. 선거 참패의 경우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도 있으며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줬을지 모른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단어, ‘소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적 행동을 했다.

‘독박을 쓰기 두려워 결단하지 못한 정치인’이라는 핀잔을 들을지 몰라도 국민·당원과 간접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호평도 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안 대표는 지난 8일 밤 결정을 하기에 앞서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두루 물어봤다"며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 당원과 소통을 하고 그 결과를 선택하겠다는 모습을 보인 것 아니냐. 현실 정치인으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새정치연합의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겠다는 박영선 의원도 "안 대표의 결정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으나 일부 의원들이 제시한 당원과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자는 안을 받아들인 것이니 그것대로 평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 역시 "안철수 대표 개인으로 볼 때 유약한 면이 있어, 결단을 내리고 밀고 나가기를 바랐다"면서도 "국민과 당원의 입장을 물어 결정한 것은 새 정치 아니냐.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구시대 정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는 8일 발표를 하고 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고통스런 결정이었다.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하면서 당원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또 다른 독선이 아닐까 싶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정치인들은 거의 모든 발언에서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선한 뜻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정치인들이 욕을 많이 먹고 있긴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작금의 여의도엔 괜찮은 정치인들도 꽤 많다.

당직에서도 배제되고 국정에도 참여하지 못한 새누리당의 여러 의원들을 만나 보면 “우리 당엔 소통의 정치란 없다”고 말한다. 당 지도부가 모든 결정을 하고 의원들에겐 통보만 한다는 불쾌함이다.

그들은 청와대 주변과 당 지도부의 불통에 대해 내심으로는 불편해하면서도 겉으로는 ‘눈치’를 보느라 말을 아끼고 있다. 소통을 원하고 불통을 비판한다면, 안철수 대표의 이번 결정은 소통의 일종으로 평가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화두인 '소통'. 말은 쉽지, 실행으로 옮기기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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