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日 북핵공조 복원속 '미·중 힘겨루기' 변수

美中 국방장관 정면충돌 '설상가상'…新냉전구도 우려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의 '워싱턴 회동' 이후 그렇찮아도 불안한 흐름을 보이던 한반도 정세가 더욱 복잡해졌다.

한·미·일 3국이 "북한의 추가도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며 고강도의 대북 압박메시지를 보내자 중국이 "관련국들은 언행을 삼가라"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특히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국방장관이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까지 연출됐다. 자칫 '한·미·일' 대 '북·중'의 신(新) 냉전구도가 동북아에서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3국 전열 재정비…北日대화 드라이브에 '일침' =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은 그동안 전열이 다소 흐트러졌던 3국이 다시 '대오'를 재정비하고 대북압박 공조를 복원한 무대였다.


무엇보다도 과거사 갈등으로 삐거덕거리던 한국과 일본이 북핵을 고리로 다시 대화테이블에 앉았다. 부분적으로나마 한·일간의 안보협력 관계가 결속되는 징후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또 한가지 주목할 대목은 일본의 독자행동 양상을 띠었던 북·일 대화가 한·미의 개입으로 비핵화 흐름과 일정정도 보조를 맞추게 된 점이다.

북·일대화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6자회담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자 추진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협상 틀이다. 납치자 문제라는 국내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걸린 탓이다. 특히 아베 정권은 임기중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 하에 더욱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식협의 채널과는 별도로 북·일간 비밀접촉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으로서는 이 같은 '뒷거래'가 자칫 대북압박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3자회동 계기에 일본을 향해 북·일 대화를 '투명하게' 진행하라는 주문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일본과 북핵 양자회담을 재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이번 회동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완과 균열 조짐을 보여온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의미가 가장 크다"며 "북·일대화의 경우 납치자 문제가 인권사안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을 지지하지만 북한과의 협상을 보다 투명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대북메시지 여전히 '압박' = 한·미·일이 보낸 대북 메시지의 방점은 어김없이 '압박'에 놓였다. 특히 북한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을 겨냥해 고강도의 '사전경고'를 보내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이 이번에 또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와 함께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추가도발 즉시 자동적으로 안보리 조치를 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해 3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094호는 북한의 추가 도발시 곧바로 안보리 회부 등의 중대조치를 취한다는 '트리거 조항'을 담고 있다.

사실 이번 회동의 또다른 의제로는 '대화재개 노력'도 있다. 지난달 헤이그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한국과 미국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고, 이를 의식한 한·미 양국은 이번 회동에서 대화재개 부분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도발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대화재개의 동력은 현실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게 워싱턴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번 회동에서도 구체적으로 진전된 내용없이 대화 재개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선에 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중국 '대중 포위구도' 우려…불만 표출 = 그러자 6자회담 재개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중국이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정세는 매우 취약하다"면서 "우리는 유관 당사국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함으로써 정세완화와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미·일이 6자회담 재개에는 소극적이면서 북한에 대해 압박 일변도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특히 이번 한·미·일의 대북공조 움직임이 단순히 북한을 겨냥한게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포위구도'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중국으로서는 한·미·일이 대화재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압박만을 강조한데 대해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자극한 것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방중을 앞두고 노골적인 일본 편들기 행보를 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헤이글 장관은 6일 일본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분쟁 등과 관련해 중국이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헤이글 장관과 창완취안(常万全) 중국 국방부장은 현안을 놓고 외교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설전'을 주고받았다. 한반도의 핵심현안인 북한 문제를 놓고도 첨예한 시각차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중 힘겨루기' 한반도정세 변수 = 앞으로 한반도정세의 향방을 가를 일차적 변수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여부다. 한·미·일 당국자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4차 핵실험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기술적 준비는 끝났고 정치적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는 얘기다.

한·미·일은 추가 핵실험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억지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맞물려 주목해야할 변수는 중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중국이 어떤 수준에서 북한을 자제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북한이 4차 핵실험 가능성을 거론한 데 대해 중국주재 지재룡 북한대사를 소환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한·미·일에 대해서도 냉정을 촉구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미국과 갈등관계로 접어들 경우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른바 'G2'(주요 2개국·미국과 중국) 관계가 한반도 정세의 긴장과 이완을 주도하는 핵심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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