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국정원이 자리바꿈을…?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KBS가 최근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응시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애국가를 부르면 그 내용을 지킬 자신이 있냐'

채용면접장에서의 질문치고는 조금 뭣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 다음 질문은…

'종북 세력이 있다고 보는가', '종북좌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에 따라 발길질 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일종의 사상검증이다. 그 다음은 오히려 질문하는 면접관의 사상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건국일을 언제로 보나'

건국일과 건국절은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 진영에서 등장했다가 헌법전문에 명시된 우리나라의 정통성과 오히려 배치된다는 논란을 벌이고 사라진 주제. 이 질문은 뉴라이트 동조자를 뽑으려는 건지 솎아내려고 하는 건지… 상당히 주관적이면서도 애매하다.

(자료사진)
KBS 측은 '시사현안에 대한 균형 있고 다양한 시각을 합리적인 근거로 말하는가'라는 기본 자질을 알아보는 취지였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KBS가 2012년 채용에서 던진 질문 등과 연결해 생각하면 의도는 분명 있는 질문으로 보인다. 당시 면접관들은 응시자들에게 '당신은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파업은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국정원. (자료사진)
나름 사상검증을 수행해야할 곳이 있는데 국정원이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이 지난 주 중앙합동신문센터를 공개하면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자. (4월 6일자 미디어오늘, 4월 7일자 한겨레신문 보도).

탈북자들을 방에 수용한 뒤 외부출입을 일체 허용 않거나 폐쇄회로 TV로 감시한 정황이 드러나 문제가 됐지만 2010 실태조사 보고서의 내용도 거론됐다.

심문관이 탈북자에게 이런 19금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나오기 힘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성 경험이 있습니까?", "가장 먼저 배꼽을 맞춰 본 사람이 누구입니까?"


뭔가 자리가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KBS 면접관이 국정원 심문관으로 자리를 옮겨 '애국가 4절 부를 수 있나?', '애국가 내용처럼 나라를 사랑하겠는가?', '종북세력이 있다고 보는가?', '이 나라의 건국일이 언제인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건립일만 외우는 건 아닌가?' 이렇게 따지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국정원이 특채로 데려갈 일이다.

◈ 사상검증도 트렌드라니…

몇 년전부터 사상검증은 우리 사회에 트렌드로 등장했다. 정치, 경제, 국방, 노동, 교육, 종교… 모든 분야에서 번져 나간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정몽준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기회가 있으면 자유민주주의와 그 가치에 대해 토론해보자고 제안했다.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예비후보들은 지난달 25일 정책 토론회를 가졌는데 홍문표 후보가 나서서 안희정 지사에게 "안 지사의 사상에 대해 칼날같이 검증해야 한다. 만약 사상이 잘못됐다면 석고대죄하고 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 신부 중에 군종신부들도 사상검증에 휘말려 추천된 신부 중 3명이 탈락했다. 군종신부 탈락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신부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이다.

신부의 답변은 "내용보다 이행과정이 잘못된 거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많이 아파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뜻일지 모르겠다"

에밀 카폰 신부. (사진=CNN 영상 화면 캡처)
지난해 화제가 된 6.25 전쟁 때의 종군 신부 에밀 카폰 신부를 떠올린다.

전투 중에 부상병을 구하기 위해 총알 사이를 헤치며 달렸다. 원산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됐을 땐 철수 권유를 마다하고 끝까지 부상병을 돌봤다.

결국 포로가 되었지만 병약해 진 몸으로 다리를 절면서도 공산군 경비막사에서 감자와 소금을 훔쳐 포로들을 먹였다.

1951년 부활절에는 처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부활절 미사를 집전했다.

포로 수용소에서 끝까지 포로들을 돌보다 이질과 폐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 때 그의 나이 35살. 1년 전인 2013년 4월 11일 오바마 대통령은 카폰 신부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이런 군종신부를 찾아내는 질문은 어떤 것일까? 가톨릭의 해군기지 반대 움직임이 기분 나쁜데 혹시 하나님 뜻이 해군기지 건설인데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겠냐고?

대법원에서도 사상검증의 칼날이 오락가락 했다.

지난해 10월, 통합진보당 대리 투표 사건 판결이 무죄로 나왔다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격했다. 판결이 납득가지 않는다가 아니고 좌편향이어서란다.

'요새 좌편향 판결 찾아보면 더 화가 납니다', '그 판결이 적절합니까? 국민 일반적 눈높이에 맞춘 판결이라고 봅니까? 어느 쪽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한 사상의 자유가 있다.

마구 묻고 따지고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없으며 누구든 자기 사상을 사람들 앞에서 이실직고해야만 하는 의무도 없다.

어떤 일에 꼭 필요해 당신의 국가관을 설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려면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수가 충분히 수긍할 만 한 질문이어야 한다.

찬반이 엇갈리는 주제로 사상을 논하며 압박하고 골통이다 좌빨이다 폄훼하고, 양자택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건 부적절하다.

더구나 자기들 일부의 기준이 곧 전체의 기준이 되어 남의 사상이나 양심을 판단하려 한다면 오만이다. 이념검증, 사상검증이란 구실로 하나의 기준만 세워 나가려 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의 싹이 틀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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