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묻힐 뻔 했던 아동 폭행의 이 같은 충격적인 실태가 지난해 10월 갈비뼈 16개가 부서진 채 숨진 '서현이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인면수심의 잔혹함도 문제지만 보다 큰 문제는 이 같은 아동 학대와 폭력이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지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번 '칠곡 계모 사건'의 피해 어린이는 2년 전부터 경찰에 학대 사실을 신고했으나 부모의 협박으로 말을 바꾸면서 그냥 지나갔다. 동생은 숨지기 전 얼굴이 붓고, 가슴의 이빨 자국, 팔다리와 등의 멍 자국 등 온 몸이 상처투성이어서 학교 담임교사가 아동보호센터에 알렸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모의 항의로 실태조사가 진전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되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동생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새엄마에게 얼굴에 멍이 들도록 폭행을 당했지만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조금만 더 눈여겨봤더라면 폭행에 의한 죽음도, 강압에 의한 거짓 자백도 막을 수 있었겠지만 학교나 아동보호기관, 경찰 등 어디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찾지 못한 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차별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해 만 4천여 건으로 4년 전에 비해 47.7%나 증가했다. 신고 되지 않고 넘어간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아동학대의 87%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고, 또 84%는 부모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두 사건은 모두 계모에 의해 발생한 특수한 경우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아동 학대와 폭행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아이들을 다스리고 훈육하는 방법으로 체벌을 쉽게 용인하고 있지만 이것이 결국 학대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아동학대의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됐는데도 보호막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무관심과 제도상 맹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더라도 부모가 다른 핑계를 대며 부인하거나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서현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특례법'이 제정돼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되고, 신고 접수 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과 사법경찰이 같이 출동하도록 하는 등의 보완조치가 마련됐지만 오는 9월에야 법이 시행된다. 법 이전에 아동학대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웃집 일이라고, 또 남의 가정사라고 방관하지 말고 즉각 신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학대의 징후가 농후한 경우 아이들을 반드시 격리 보호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