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서 누명벗은 사형수 16명…공식 사과는 3명뿐

검사는 무죄 구형 피하고 판사는 개인 소회만

법의 지배가 확립되지 않은 시절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희생자들 대다수가 아직까지 국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8일 법원 판결문검색시스템에 따르면 시국사건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사형수는 16명이다. 이 중 13명은 판결 확정 뒤 사형이 집행돼 사망했고, 3명은 사면·감형 등으로 풀려났다.

가장 잘 알려진 피고인은 1981년 1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5·18 전야에 동교동 자택에서 체포된 후 내란음모·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2심부터 민청학련 사건과 병합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피고인 53명 중 8명이 사형 확정 뒤 20시간도 채 지나기 전인 1975년 4월 9일 새벽 모두 처형됐다.

1950년대 후반 진보당을 이끌다가 간첩으로 몰린 조봉암 선생, 민족일보 사장으로 혁신계 논의를 주도하다가 5·16 이틀 뒤에 붙잡힌 조용수 선생 등도 널리 알려진 사형수다.

이밖에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으로 희생된 김정인씨, 민족일보 사건에 연루된 송지영씨, 남북한 이중간첩 혐의를 받은 심문규씨, 대구 피학살자 유족회 사건의 이원식씨 등이 있었다.


김 전 대통령, 송지영씨, 이원식씨 등 3명은 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구명 노력과 상관없이 죽음을 맞았다. 법원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재심을 통해 이들 누명을 벗겼다.

서울고법은 김정인씨의 재심 판결문에서 "그동안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지낸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모두의 마음을 담아 심심한 위로의 뜻을 밝힌다"고 썼다.

그러나 김정인씨, 송지영씨, 심문규씨 사건 이외에 판결문을 통해 사과받은 사형수는 없다. 재판부는 저마다 무죄 선고와 함께 소회를 낭독하면서도 이를 문서로 남기기 부담스러워 했다.

더구나 검찰은 불법 행위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끝까지 상소하는 일이 잦았다. 특별한 논고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한 형을 선고해달라"며 애써 무죄 구형을 피하려 했다.

한 고위 법관은 "선배 법조인 가운데 잘못된 수사와 재판에 대해 직접 책임진 이가 없다"며 "재심 재판부라도 정중히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한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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