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공천폐지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로 여야가 논의할 사안이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각 당이 선거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나는 것이 선거중립 등 정치적 논란을 불러 올 수 있어서 만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밝혔다.
박 대통령의 안철수 대표 면담요청 거부는 곧 2012년 대선 때 약속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촉박한 선거일정상 4월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박 대통령 임기내에 기초공천 폐지는 물건너 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1월 6일 새누리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의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이후 여러 차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입장을 천명하면서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대표공약'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대표 공약인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약속에 이어 지키지 못한 '공약'(空約)이 되면서 공약 파기 논란이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박준우 정무수석이 안철수.김한길 대표를 만나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전한 '기초공천제 폐지는 여야가 합의할 사안'이라는 부분은 국민들이 다 아는 정치 현실을 법.제도를 들이대서 무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여당, 즉 당청의 경계가 불가능하고, 여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데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 사안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아무리 민생.경제 관련 법안이라고 해도 국회에, 특히 야당에 통과를 촉구하거나 압박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불과 20일전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직전에 원자력방호방재법의 통과를 촉구했다.
기초공천폐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 회피는 마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던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유감을 표명하고 확실한 대책을 세우라는 요구에 대해 '국정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지도,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면서도 여야가 합의하면 국민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특검 요구를 무시했다.
기초연금 연금 공약 파기때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겠는 공약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취임전부터 제기된 공약 이행 논란과 관련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긴 침묵모드에 들어갔다.
기초연금 공약 이행 문제로 주무장관이던 진영 전 복지부 장관까지 사퇴하는 등의 파동이 있은 뒤에야 국무회의 석상에서 지키지 못하게 됐음을 인정했다.
당시는 그래도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임기내에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라도 있었지만 이번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대해서는 그런 형식조차 없이 법개정 문제라며 여야합의를 내세웠다.
청와대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이 박준우 수석을 통해 야당에전할 말 외에는 다른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괜한 말로 문제의 불씨를 만들지 않고 '내리는 소나기는 맞겠다'는 전략인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통령에게는 60%를 상회하는 단단한 지지도가 있고, 곧 기초공천 유지/폐지 문제로 야당이 시끄러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