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죽음' 휴대전화에는 스팸 문자뿐이었다

'기초생활 수급자' 노모와 장애인 아들 숨진 채 발견

70대 노모와 장애를 앓는 40대 아들이 함께 쓴 휴대전화에는 스팸 문자만 가득했다. 제2금융권에서 보낸 대출 알선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통화 목록과 저장된 휴대전화 번호는 하나도 없었다.

단절된 세상과 잇는 유일한 끈은 구청 사회복지과 직원뿐이었다. 구청 직원은 모자가 지난해 5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 이후 1∼2주에 한 번씩 집을 방문했다.

최근 닷새째 연락이 닿지 않자 구청 직원이 119와 경찰에 신고했고, 모자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4일 오후 1시께 인천시 남구 숭의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A(70·여)씨와 A씨의 아들 B(45)씨는 2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나란히 누운 상태였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7일 "B씨는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A씨는 아들을 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며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 얼굴을 보고 있던 어머니 모습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시신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경찰은 부패 정도로 미뤄 사망한 지 3∼4일 정도 된 것으로 추정했다.

방 한구석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 2장이 있었고, 방문과 창문 틈새는 청테이프로 막아놨다. 이들 모자가 썼던 전기장판과 배게 2개만이 주인 없는 빈방에 덩그러니 남았다.


집주인은 "2주 전에 이불과 옷가지를 갖다 준다고 찾아갔는데 A씨는 없고 아들만 있었다"며 "어머니한테 전해 주라고 한 게 마지막으로 본 날"이라고 말했다.

이들과 자주 만난 구청 사회복지사 C(37·여)씨에 따르면 A씨는 한때 시가 8천만∼9천만원 짜리 작은 건물을 소유했을 정도로 살림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왜소증과 시각 장애를 앓던 아들을 위해 사업 자금을 대줬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급속히 가세가 기울었다.

C씨는 "할머니가 몇 년 전 아들한테 PC방을 차려줬다가 입주 건물이 잘못돼 보증금과 권리금 등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억대 사기를 당하면서부터 힘들게 지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빚은 느는데 근로 능력은 줄었다. 이들 모자는 결국 지난해 5월 전세금을 빼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짜리 지금 집을 얻었다. 보증금의 일부도 구청 지원을 받았다.

다행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선정됐지만 쥐꼬리만한 수급비로 생계를 잇기엔 힘에 부쳤다. 사정을 알아봐 준 한 이웃이 A씨에게 가끔 가사 도우미 일거리를 줬지만 3만∼5만원의 일당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은 가족과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직계가족이 없어 분향소도 차려지지 않았다. 어렵게 경찰과 연락이 닿은 조카들이 십시일반 장례비 400여만원을 거둬 시신만 병원 영안실에 안치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가 없어 구청을 통해 어렵게 A씨의 조카들을 찾았다"며 "남편과는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고 외아들인 B씨 외 다른 자녀는 없었다"고 말했다.

A씨의 조카는 "20년 전에 이종사촌 형을 본 뒤 왕래가 없었다"며 "얼마 전에 어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이모에게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청은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이들의 화장비용으로 15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천 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잘 얘기하지도 않는 분들이었다"며 "남한테 피해를 주거나 도움을 받는 걸 무척 미안해하셨던 분들이었는데 굉장히 안타깝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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