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 섬뜩한 말을 남기고 간 아베 노부유키는 누구인가?
그는 1944년 7월부터 패전 때까지 조선 총독을 지낸 인물로, 재임 기간 중에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쥐어짰다.
친일을 거부한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포해 12~40세의 미혼여성들을 끌고 가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하거나 전선에 보내 군 위안부로 착취한 인물이다.
그가 자신있게 조선을 떠나기 전 총독부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은 바로 총독부에 설치한 '조선사편수회'라는 조직과 거기서 일했던 친일파 때문이다.
◈ 총독부,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 설치하다
국민운동본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 이래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에 맞서는 대응 논리를 세우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그에 동조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동북아재단이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연구서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이 한국 고대사에 대한 식민사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운동본부는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북부는 중국 식민지가 되고 남부는 일본 식민지가 된다"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가 정립한 식민사학을 국가기관이 세계 학생과 재외공관에 배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재단 측은 서둘러 기자간담회를 통해 "구미학계에서는 심지어 1930년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인식이 영문으로 번역돼 유포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외의 기존 연구성과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한사군을 중심으로 일본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한국 고대사 내용을 설명한 책"이라고 반박했다.
동아시아의 영토·역사 분쟁에 맞서는 대응논리를 만들라는 정책 목표로 설립된 국가기관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연간 수백억대의 국고가 지원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들은 당연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침략사관에 맞서 싸우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에 동조해 매국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그 뿌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역사가인 박은식 선생이 중국에서 저술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조선에 유입되자 당황했다.
그래서 서둘러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식민사관을 토대로 한 <조선사>편찬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 단체에는 천황을 신봉하는 일본인 어용학자를 중심으로 친일 소장 한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가한다.
또 구색을 맞춘다고 이완용,박영효,권중현 등 거물 친일파들을 고문으로 위촉했다.
이들이 저술한 <조선사>의 요체는 조선의 역사는 식민지 혹은 외세의 압제에서 시작했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조선 지배는 고대사회에서 일약 근대사회로 도약시켰다고 조작한 것이다.
이 역사 조작의 주역은 일본 학자로는 이마니시 류가, 조선 학자로는 이병도와 신석호가 주도했다.
◈ 식민사관을 완성한 이마니시 류와 이병도
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고대사다.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중국 식민정권인 한사군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세웠다.
이병도는 한사군의 위치를 만주로 본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을 부인하고, 한반도에 있었다고 강변했다.
이마니시 류는 '단군조선'을 곰과 호랑이의 허황된 이야기라고 왜곡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또 1천년간 불리어 온 '삼각산' 이름마저 지워버렸다.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지명을 바꿀 때 그가 제멋대로 '북한산'이라고 기록해버렸다.
해방과 함께 역사학계는 친일 학자를 강단서 쫒아내고 식민사관의 뿌리를 근절해야 했었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무산되고 박은식, 신채호 선생에 이어 민족주의 사학자인 안재홍, 정인보 선생이 떠나면서 그 공백을 친일학자들이 채우게 된다.
조선사편수회에서 맹활약한 이병도와 신석호는 각각 서울대, 고려대 교수로 들어가 제자를 양성했다.
이병도가 걸어온 길을 보자.
서울대 대학원장~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대한민국 학술원 회원~국사편찬위원~문교부장관~대한민국 학술원 원장.
경력 중 특이한 것은 1962년에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에 같은 친일학자인 신석호와 함께 참가한 것이다.
평생을 친일문제를 연구한 임종국 선생은 생전에 친일 전력가들이 삼가해야 할 몇가지를 언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였다.
이렇게 청산이 안된 식민사관이 흘러 흘러 동북아역사재단에 침투해 급기야 해방이 되고도 69년이 지난 이 시점에 '식민사학해체 국민운동본부' 가 출범한 것이다.
아베총독의 마지막 저주를 곱씹어봐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최근 식민사학을 분석한 문제작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저술한 소장 역사학자 이주한 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식민사관의 가장 큰 폐해는 진실을 훼손해 국민들에게 열등감을 주입하고,비주체적인 삶을 내면화한다는데 있다. 민족에게 노예의식을 심는데 식민사관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 이것이 역사학자가 아니었던 단재 신채호,위당 정인보,석주 이상룡 등이 무장투쟁을 하면서도 역사연구에 매진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