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안창마을은 20년이 넘은 방 한두 칸 짜리 주택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어 그야말로 ''도심 속 오지''다.
80년대에 들어서야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할 만큼 낙후된 이 마을에 현재,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안창마을 1600세대 아파트 단지로
부산 동구청의 발주로 지난달 마무리된 ''범천 유형유보 1구역(안창마을) 재개발정비사업 정비계획수립 용역''에 따르면 현재 870 세대의 노후건축물이 들어선 마을은 3개 단지, 36개 동, 1천6백여 세대의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
동구청은 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마무리하면서 지난달 26일 주민설명회까지 마쳤고, 오는 3월까지 구역지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구역지정이 마무리되면 공은 재개발 조합으로 넘어가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게 된다.
하지만 오지마을이 번듯한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 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는 만큼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안창마을의 경우 90%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세대가 국공유지 위에 세워진 무허가 주택에서 살고 있다.
부산시 조례로 1989년 3월 29일 이전부터 살고 있던 세대는 무허가 세대라도 아파트 분양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지만, 남의 땅 위에 지은 10평 안팎의 주택을 가진 이들에게 보상은 미미한 수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아파트 입주시 필요한 분양대금은 커녕 당장 보상비를 받아 임시거처를 마련하기도 힘든 주민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안창마을의 한 주민은 "재개발이 되면 좋기야 좋겠지만 무허가 주택인 사람, 평수가 작은 사람은 어차피 떠밀리듯 떠나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량 무허가주택에 낮은 보상가, "밀려나는 것 뻔해"
실제로 영도구 청학동 재개발 지구처럼 주민의 70% 가량이 비싼 분양가 때문에 분양권을 포기하고 보상금을 받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례가 안창마을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 재건축 시민대책위 류승완 대표는 "부산지역의 경우 주민들의 재정착률이 10%도 안 되는데, 안창마을의 경우 토지소유주가 아닌데다 불량주택이라 보상비가 적고, 때문에 아파트 입주 우선권을 준다 해도 아파트를 살 여력이 안 된다"며 "밀려 나가는 것은 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더 큰 문제는 재개발 조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소외된다는 점이다.
마을주민 대부분 조합구성 참여 못 해
안창마을에는 이미 조합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운영되고 있는데, 추진위원회는 늦어도 오는 6, 7월까지는 재개발 조합 구성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조합 구성자격을 가진 토지소유자는 전체 870세대 가운데 83명에 불과하다는 것.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주택과 부속토지를 소유한 이른바 ''토지등소유자''만을 조합 구성원 자격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위법인 부산시 조례가 89년 3월 이전 무허가 주택 세대에 대해서도 분양신청자격을 부여했지만, 이들 세대는 일단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야 조합원으로 가입이 가능하게 된다.
안창마을 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일단 조합이 구성되고 나면 정기총회를 해서 무허가 분들도 가입시키는 방향으로 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무허가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결국 안창마을의 경우는 토지소유자 83명의 75%인 63명의 동의만 얻으면 조합이 설립되고 재개발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따라서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허가 주택세대는 조합이 설립된 뒤 자신의 조합가입 여부만 결정할 수 있게 돼, 그야말로 조합에 가입하거나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83명 지주 손에 달린 마을운명, 대표성 문제도 제기
결국 83명의 토지소유자에게 마을의 운명을 맡기는 셈. 조합구성시 재개발 지역내 75%이상 토지소유주 동의를 얻도록 한 현행법 규정은 주민대표성을 확보하라는 취지지만 안창마을에는 오히려 독소조항이 되고 있다.
현재 재개발 구역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동구청에서는 이같은 조합의 주민 대표성 결여 문제에 대해 충분히 주민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그런(대표성)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며 "앞으로 구역지정 고시까지 주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주민설명회에는 60-70여 명의 주민만 참석하는 데 그친데다, 술에 취한 일부 참석자들의 소란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끝나 앞으로 주민의견이 얼마나 충실하게 수렴될 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기쁨도 잠시, 쥐꼬리 보상금만 받고 생활터전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안창마을 주민들은 제 목소리 한번 내 보지 못한 채 일부 지주들의 손에 마을 운명을 고스란히 맡기는 상황을 맞아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