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동화를 한 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설사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키다리 아저씨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정도는 알 것이다. 누군가를 숨어서 지켜보며 도와주는 사람. 키다리 아저씨는 이런 사람의 대명사다. 절대 스토커는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를 모티브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 ''키다리 아저씨(제작:유빈픽쳐스/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가 오는 1월 13일 개봉된다.
드라마 ''다모''와 최근 영화 ''신부수업''을 거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하지원, 이번 작품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는 부드러운 미소가 매력적인 연정훈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코믹 연기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신이, 정준하 그리고 박은혜, 현빈, 오대규로 이어지는 ''빵빵한'' 우정출연진. 영화 ''키다리 아저씨''는 출연하는 배우들만 봐도 저절로 기대가 되는 영화다.
관객의 초점은 당연히 ''키다리 아저씨가 과연 누구일까''에 맞춰진다. 영화 속에서 쫑(신이 분)이 "왜 꼭 남자라고 생각해? 여자일 수도 있잖아"라고 말은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는 키다리 아저씨가 남자임을 안다. 제목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아저씨'' 아닌가.
따라서 대상은 압축된다. 영미(하지원 분)가 일하는 방송국의 멋진 이사(오대규 분), 자료실 총각 준호(연정훈 분), 영미와 함께 일하는 이PD(정준하 분). 이들 중 키다리 아저씨는 과연 누구일까.
영미의 대학 4년 등록금을 납부해 줄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사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 반면 영미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PD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혹시 생뚱맞게 준호일까?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비밀에 부친다.
수채화로 시작되는 첫 장면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잔잔하게 수채화의 느낌으로 흘러간다. 어떤 큰 웃음도 강렬한 사건도 없다. 물론 닭살 커플 쫑과 이PD가 등장해 간간히 미소를 짓게 하지만.
또한 영화 중간중간 주인공 영미(하지원 분)가 우연히 읽게 된 이메일 속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져 자칫 늘어지거나 밋밋해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잃고 만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행복한 연인은 드라이브를 떠난다.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 때 느닷없이 떨어지는 별똥별 하나. 아, 진부하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행복해지려는 두 사람, 그런데 한 사람이 희귀한 병으로 죽는단다. 역시 진부하다. 게다가 최근 유행인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는 병''이다. 기억을 잃는다.
반면 대부분의 멜로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는 데 반해 이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떠난다는 점은 그나마 새롭다. 또 한 가지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의 아파하는 모습을 억지로 보여주며 관객들의 가슴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 괴로워하거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연정훈의 모습과 슬퍼서 울부짖는 하지원의 모습은 없다. 그래도 객석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키다리 아저씨''는 어떤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온몸을 자극하는 쾌락을 선사하는 영화도 아니다. 공정식 감독의 말대로 "보이는 사랑과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해 조용히 얘기하는" 영화다. 큰 기대를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면 영미와 준호의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컷뉴스 이혜윤기자 eyang119@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