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극단 ''목화''의 간판 스타 박희순이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지난 2년간이 그랬다. 1년내내 매 작품 계속 열심히 캐틱터 변주를 해 가면서 찍어왔는데 하나도 개봉된 작품이 없다니...이런 허탈감을 어디가서 하소연하나.
오태석 선생의 명 극단 ''목화''의 연극 ''부자유친''에서 성지루가 영조 대왕을 했다면 박희순은 사도세자를 연기했을 만큼 당당한 주연이었던 체면을 따질때가 아니다. 송강호의 명대사 ''너 밥은 먹고 다니냐?''에 버금갈 대사로 박희순에게 묻는다면 ''당신 연기는 하고 있긴 하냐?''가 될 법한 노릇이다.
박희순은 이윤기 감독의 ''러브토크''이후 만화가 강풀 원작의 ''바보''와 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의 촬영을 마쳤다. 여기에 14일 개봉하는 ''세븐데이즈''(원신연 감독)까지 하면 모두 네편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정산해보니 현재 개봉 예정 스코어는 ''세븐데이즈'' 단 한편이다. 물론 한국영화의 급속한 침체와 배급사정이 주 원인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찍은 배우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홧병이 날만하다. 배우가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작품인데 찍기는 찍되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오죽 답답했으랴. ''세븐데이즈''도 ''목요일의 아이''로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간신히 재촬영에 성공해 오늘날 이렇게 관객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제서야 답답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이 확 뚫린다는 박희순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코미디 연기에 목말라 있던 차에 우물물 마신격
탄탄한 연기내공으로 무장된 연극 배우출신들의 충무로 입성에서 본인들이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은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올때의 이미지 고착화. 발을 디딜때 코미디 연기로 입성하느냐 조폭 건달의 악역으로 입성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이렇게 시작된 이미지 고착화는 연이은 작품의 조연급 연기에서 관객들에게 각인되고 이내 쉽게 그 부담스러운 외피를 걷어낼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들 이력이 쌓일 수록 힘들어 하게 된다. 이미지 변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희순도 그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에게는 ''가족''이 그렇다. 수애를 괴롭히는 악질적인 건달의 이미지는 수년간 이어졌고 그것이 굳어져 힘들어했다. ''러브토크''나 ''남극일기''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흥행 부진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에게 스릴러 ''세븐데이즈''는 그래서 반갑다.
"연극에서 코믹하고 발랄한 모습이 많았어요. 하지만 영화로 오니까 그 기운이 다 사라지고 무겁고 어둡게 가네요. 이게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죠. 그렇게 코미디 연기에 목말라 있었어요."
실제 강력반 형사를 만나 스터디했다. 술잔이 이어질수록 전형적인 FM 같던 형사가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면서 박희순은 ''그럼 나는 반대로 겉으로는 풀어졌지만 속은 치밀한 형사로 가야지''하고 캐릭터를 조각했다. 그렇게 박희순 표 성열이라는 형사가 만들어졌다.
유명해지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워낙 평소 숫기없는 배우여서일까? 연기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한데 현실은 배우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하물며 이렇게 개봉을 앞두고 마치 의무방어전으로 치러내는 인터뷰까지...
"연극 무대에 서면 정말 모든것이 다 제몫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해내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였고 성취감이었죠. 하지만 영화는 감독과의 협의, 배우간의 조화, 편집까지 모든것이 복합적이잖아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죠. "
박희순의 욕심은 배우답다. 좋은 작품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고 좋은 배우들과 파이팅을 펼치는 거다. 그럴려면 어느정도 인지도가 담보돼야 한다. 관객이든 제작자든 감독에게서 말이다. 박희순의 고민은 무릎팍도사에 나가서 해결해야 할까보다. ''안유명해지면서 좋은 작품을 계속할수는 없을까요?''기 때문이다.
홧병 치유되고 이제 가슴 뻥뚫려
''헨젤과 그레텔''도 조만간 개봉 일자를 잡을 수 있으 것 같다는 희소식이 들려 가슴을 쓸어내렸단다. "''세븐데이즈'' 촬영하다가 중단되면서 좀 쉬었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그러다 다시 촬영을 재개하는데 ''헨젤과 그레텔''이 겹치는 부분이 생겼죠. 하지만 잠을 안자도 두작품을 찍어 나가는 일이 힘든 줄 모르겠더라구요. 내가 촬영장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했나봐요."
현장을 연인만큼이나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즐기는 박희순. 그 땀의 결정체를 관객앞에 선보이지 못해 홧병이 나 병원을 다니기 까지한 박희순의 멍든 가슴을 이제 관객이 치료해줄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