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렁큰타이거 "무대 위에서 죽을 수도 있다"

[노컷인터뷰] 7집 ''SKY IS THE LIMIT'' 발표한 드렁큰 타이거

드렁큰타이거


드렁큰타이거(서정권·33)는 언제나 ''사람''이 궁금한 음악인이다.

한 발 떨어져 상대를 관찰하기보다 아예 마음속으로 들어가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는 습관이기보다 관심이자 뜨거운 애정이다.

그래서 드렁큰타이거가 쓴 노랫말에는 언제나 울음이 섞여있다. 힙합안에서 표현한 이야기들은 꽤 질기다. 2년 만에 발표한 7집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SKY IS THE LIMIT)''에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오히려 한 층 깊어진 드렁큰타이거의 사람 이야기는 쉴새없이 반복된다.

20곡, 끊지 않고 들으면 68분에 달하는 이번 음반은 드렁큰타이거가 표현하고픈 모든 것을 담았다. 빼거나 더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곡절을 겪은 2년간의 경험과 그 속에서 받은 느낌을 고스란히 표현하며 변함없이 ''사람''을 노래하고 있다.

"음악이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드렁큰타이거는 지난해 희귀병인 척수염 진단을 받고 지루한 투병을 시작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고 검진도 받아야 했다. 한 번도 긴 공백을 두지 않던 그는 지난해 라이브 무대를 자제했다.

올해 들어 상태가 좋아졌지만 시련은 또 왔다. 그에게는 누구보다 큰 존재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한참 음반을 준비하던 드렁큰타이거는 두 사건을 겪으며 새 음반의 색깔을 정했다.

"음반 준비를 시작하며 컴퓨터에 폴더를 만들고 이름을 ''7번째 지옥''이라고 정했어요. 처음 작업한 노래는 모두 갱스터였는데 드렁큰타이거 노래가 맞나 할 정도로 낯설었어요.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지 않은 영혼''이라고 폴더 이름을 바꿨죠. 아픔을 겪었지만 행복으로 가는 게 맞는 선택 같아요."

드렁큰타이거는 음악이 누구에게나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늘 그렇듯 음반을 만들며 고려한 ''기획 의도''는 이번에도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담아내자는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

"노래마다 하나씩 설명하고 의도를 얘기하는 건 괜히 아티스트인척 하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해요. 힙합이나 랩도 마찬가지죠. 화가 나지도 않았는데 화난척 하면서 랩을 하는 건 정말 우습죠."

"1번 곡부터 20번까지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


녹음 스타일도 독특하다. 가사를 완벽하게 완성하지 않은 채 일단 녹음 부스에 들어가고, 그때의 흥을 살려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든다. 이런 방법은 녹음 스태프들에게는 ''골칫거리''지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맛을 선물한다.

무려 20곡을 수록했는데도 타이틀곡을 따로 정하지 않은 건 이런 즉흥성에서 기인한다.

음반 발표 직후 ''주정''이 온라인 음악차트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소속사에서는 ''내가 싫다''를 타이틀곡으로 결정하자 했지만 드렁큰타이거는 꿈쩍하지 않았다.

"1번 곡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부터 20번째 노래 ''타이거 JK 세즈(SAYS)''까지 차례로 들으면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돼요. 시나리오를 쓰듯이 한 곡씩 연결하면서 큰 줄거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타이틀곡은 정하고 싶지 않아요. 중간에 쏙 뽑아 듣는다면 전체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3~4분에 끝나는 노래가 아니라 68분 동안 이어지는 방대한 곡이라는 자신감이다. 지금까지 이런 방법으로 작업을 펼친 음악인이 드물었던 까닭에 드렁큰타이거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귀가 솔깃했다.

드렁큰타이거


"멋있게 꾸미는 걸 의도적으로 거부했죠. ''주정''이 치고 올라왔는데 사람들은 또 술 얘기를 했다고 좋아했어요. 실은 시대의 소리꾼에 대한 얘기에요. 소리꾼이 술 한잔 마시고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던지는 거친 외침 같은 노래죠."

드렁큰타이거가 내심 믿는 머릿곡은 ''8:45 헤븐(HEAVEN)''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돌이킨 자전적 노래다.

드렁큰타이거는 녹음실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의 울림은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있을 때 잘할 걸 부를 때 외칠 걸''이라고 읊는 가사는 구슬픈 멜로디와 만나 가슴을 시큰하게 만든다.

음반 재킷에서도 드렁큰타이거는 현재 자신을 둘러싼 상징적인 물건을 등장시켰다. 한 손에는 향을, 또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향은 할머니를 추모하는 의미이고, 지팡이는 척수염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없는 그가 한 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친구다.

"힙합 울타리는 인생의 부담이자 책임감''

1999년 미국에서 막 건너와 센 말투로 힙합을 노래했던 드렁큰타이거는 10년 세월을 보내고 음악인이자 예술가로 한 걸음 다가와 있었다. 그의 음악에는 언제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녹아있다.

힙합 음악인들의 비영리 그룹 ''무브먼트''의 한 축을 이루며 가요계 불황 속에서도 힙합을 롱런하는 장르로 세워놓은 공도 상당하다. 다른 건 몰라도 힙합에서만큼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힙합 울타리는 제 인생의 부담이자 책임감이에요. 방송에는 잘 나오지 않으니까 충분하게 이해시킬 수 없어요. 한 곡만 본 사람들이 ''쟤 왜 저래?''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오해가 커져서 공격의 대상이나 밉상이 되죠. 어떤 때는 똑같은 음악을 내놓고 ''이건 힙합이 아니야''라고 우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드렁큰타이거는 힙합을 하면서 늘 머릿속을 채우는 단어는 ''자유''라고 했다. "진부하지만 남으로부터의 해방과 나에 대한 자유"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힙합과는 뗄 수 없는 무대를 향한 목마름도 숨기지 않았다.

"이제 공연밖에 없어요. 진짜 무대 위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언제나 죽을 각오로 올라가요. 제 앞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만큼은 완전히 미치게 만들고 싶어요.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데 무대에 올라가면 그게 ''끝''이에요."

1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드렁큰타이거는 ''나는 바보인지도 모르겠다''라고 고백했다.

지난해 독립해 음반사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세운 그는 새 음반을 발표했지만 타이틀곡을 정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에 나서지도 않는 것을 두고 "회사 생각을 전혀 안 해요"라며 "하기 싫으면 아픈 척도 해요"라는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면서 반성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