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필터, ''성의없는'' 리메이크 관행 ''화난다''

[노컷인터뷰] 새 음반 ''Rewind'' 발표한 록밴드 체리필터



체리필터와의 대화는 꽤 알찼다. 꺼내기 어려운 문제를 쉽게 펼쳐내는 특유의 장점으로 체리필터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모두 풀어냈다.

새 음반을 소개받고자 마련한 인터뷰였지만 오히려 국내 저작권관리 문제나 록 밴드의 하락세 등 대중음악을 둘러싼 여러 견해가 오갔다. 숨김없이 생각을 꺼내놓는 체리필터는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솔직했다.

체리필터가 유독 할 말이 많은 이유가 있다. 이미 알려진 노래 12곡을 편곡해 다시 불러 새 음반 ''리와인드(Rewind)''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흔히 ''리메이크''라고 불리는 이런 작업을 두고 체리필터는 ''리와인드''라고 몇 차례나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수록곡 저작권자 모두 찾아가 동의 얻어

쉴새 없이 가요 리메이크가 이어지지만 대부분 ''성의없이'' 이뤄지는 세태에 체리필터는 불만이 많다. 리메이크의 진짜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인데다 상업적 목적을 띄지 않은 음반까지 싸잡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불편하다.

체리필터는 단순한 ''다시 부르기''를 거부했다. 발음하기도 쉬운 리메이크가 아니라 리와인드로 음반 제목을 정한 것도 ''재창조''의 의미를 더하려는 의도다.

체리필터는 수록한 12곡의 저작권자를 직접 찾아가 동의를 구했다. 저작권협회에만 통보하고 리메이크 해버리는 관행을 깨고 싶은 욕심이 발동한 이유에서다.

"정규 음반보다 더 세심하게 준비했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리와인드''에 수록된 곡들에서는 체리필터의 색이 진하게 배어난다.

''코카콜라'' CF의 30초짜리 배경음악으로 쓰였다가 곡을 보충해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느껴봐''를 비롯해 삐삐밴드가 불러 음악성을 드러낸 ''슈퍼마켓'', 신해철이 만들어 엄정화에게 선물한 ''눈동자''까지 체리필터의 손을 거치자 원곡의 느낌은 찾기 어렵다.

"요즘 리메이크는 제작비 줄이고 흥행성 높이는 상술이 됐다"


체리필터와의 대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열마 전 리메이크 관행에 경종을 울린 김동률의 발언도 등장했다.

"김동률 씨의 말은 정말 당연한 얘기인데 왜 이슈가 되는지 의아했다. 막상 리메이크 음반을 발표해보니 사람들이 리메이크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알겠다(손상혁·드럼)."

체리필터는 "요즘 리메이크는 제작비를 줄이고 흥행성을 높이려는 상술처럼 돼 버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에도 국내외서 히트한 여러 곡이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리는 중이라 체리필터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밴드라면 누구나 리메이크 음반에 욕심을 갖고 있다. 밴드만의 색깔로 음악을 바꾸고 표현하는 일에 매력을 느낀다. 원래 3집을 끝내고 리메이크 음반을 내고 싶었지만 4집을 발표하기까지도 2년이 걸려 계속 늦어졌다(조유진·보컬)."



작은 부분까지 주위를 기울이다 보니 가사가 달라진 노래까지 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주제가를 다시 수록하면서 만화 곡으로도 유명한 후렴구를 삽입하지 않은 것은 원곡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2~3곡은 마스터링까지 마쳐놓고 저작권자를 찾을 수 없거나 만나지 못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수록곡 저작권자 모두 찾아가 동의 얻어

일본 음악을 여러 곡 담고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체리필터가 만난 저작권자들 대부분은 국내 가요관계자들의 무분별한 리메이크게 불신이 생겨 ''무조건 안 된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저작권협회 자스락은 체리필터의 움직임을 알고 저작권을 보유한 여러 음반사에 ''저작권 동의를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공문까지 보냈다. 결국 일본 곡은 ''여신의 나무(와다츠미노 키)'' 한 곡이 담겼다.

체리필터는 자연스럽게 음반 시장 불황까지 이야기를 이었다.

"음반시장이 전체적으로 다운된 데는 음악가와 제작자, 저작권협회 모두의 책임이다. 단지 IT 강국으로 다운로드를 많이 해서 음반시장이 낙후됐다고 매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연윤근·베이스)."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먹었으면"

대중적 인지도와 음악성을 두루 인정받는 체리필터는 "밴드가 지켜야 할 정체성은 지키고 싶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연주 좀 해주고 작사, 작곡은 당연히 해야 하지 않나? 요즘에는 간혹 이런 간단한 정체성도 없이 음반을 먼저 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앞의 인기만 따르려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정우진)."

체리필터에게 ''진짜 욕심''을 물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뛰어들고 싶을 때가 잦다. 그런데 자존심을 버리고 섰을 때 창피하면 절대 안 된다. 우리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한 곡이라도 더 대중에게 주고 싶다."

멤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유진은 부족하다는 듯 "대중이 지금껏 고기만 먹었으니까 이제는 야채도 먹어봤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체리필터의 음악은 가요계를 꽉 채운 비슷한 장르의 ''고기''가 아닌 신선한 ''야채''라는 자신감이 깃든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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