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하던 재판부 "정몽구 회장 감옥 넣는 게 능사 아냐"

6일 항소심서 정몽구 회장 집행유예 판결

정몽구
수백억원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 ·기아차 회장에 대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오늘(6일) 오후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정몽구 회장에 대해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어떻게 판결을 내리든 반대편의 비판이 예상된다"며 "재판부가 장시간 토론했으며 동료와 후배 판사는 물론 검사와 변호사, 언론인, 경제인 그리고 택시기사, 음식점 주인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집행유예냐 법정구속이냐"와 또 제3의 길이 있을 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7년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며 "현재 뇌물죄의 최저 형량이 살인죄 보다 2배 높은 비합리적인 법률로 이는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가 법관의 의무"라며 "현대와 기아차를 합치면 국내 1위 기업이고, 정몽구 회장은 기업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독특한 스타일이고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사법부도 대한민국 사법부로서 우리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기가 꺼려졌다"고 말했다.

법정구속을 주장하는 쪽이 내세우는 미국의 엔론 사태에 대해서는 "미국은 엔론같은 기업 20개 정도 해도 끄떡없는 나라이지만 우리는 투명 경영으로 가는 과도기이며 이 사건이 과도기의 마지막 사건이라며 현재의 잣대로 과도기의 사건을 판단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엔론은 죽은 기업이지만 현대는 살아있는 기업"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동영상)집행유예 선고받은 정몽구 회장의 쑥쓰러운 미소]

▲ 이 수석부장판사 "사회 봉사명령 안 지키면 집유 취소할 수도"

이어 이 수석부장판사는 부족한 점은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제 3의 길을 선택했다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집행유예를 취소할 수 있는 강제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봉사명령은 ''1조원 사회 환원'' 약속 등을 준수하고, 전경련 회원들을 상대로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을 실시할 것과 일간지 등에 역시 준법경영 관련 기고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사회봉사명령은 정 회장이 각계 인사들로 사회공헌위원회를 구성한 뒤 2013년까지 8천400억원을 출연,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시설 건립 및 환경보전 사업 등에 쓸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이행을 못하면 집행유예가 취소된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보니 정 회장이 다소 어눌해서 (강연을 하기가) 어떠실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이 수석부장판사 "감옥에 넣는 게 능사 아니다"

한편 재판부는 배임 범행에 공모한 혐의 등으로 함께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준법경영 관련 강연 및 기고''라는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사령관인 정 회장이 집유인데 참모인 김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하고 재벌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달게 받겠다"면서 사회봉사 명령의 확대에 이번 선고의 의미가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감옥에 넣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을 사회에 공여하는 것이 실형에 갈음하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회장은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작은 돈이 아니라 1년 동안의 모든 소득에 주식 일부를 팔아야 하는 금액이겠지만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라"며 "자식에게 물려줄 기업이 언제까지 안전할 줄 아냐며 공헌한 재단이 시설을 운영하면 그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수석부장판사가 "여수 엑스포 유치에 대해서도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다"며 "여수 엑스포를 꼭 유치하기 위해 국가를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하자 정 회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재판 말미에 이 수석부장판사는 "여론조사를 많이 했는데 상층부는 실형을 주장했고, 서민 층은 오하려 집행유예를 바라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며 일반 정서가 경제 회복에 초점을 두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집행유예 선고는 사법정의와 자배구조 개선의 역사적 책무 방기한 것" 비난도

이번 선고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인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재판부가 고심하고 적정하게 내린 판단"이라며 "형을 유예할 뿐이지 면제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벌 총수 등 사회에 공헌한 사람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재판부도 예상했듯 이번 선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재벌총수 일가의 범죄행위는 대부분 그룹의 지배권을 유지 승계하기 위한 것인데 회사의 피해를 변제하고 사회공헌을 약속했다고 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법원이 다시 한번 사법정의와 지배구조 개선의 역사적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직원 100여명이 재판 시작 전부터 줄지어 철통 경비를 섰으며 법정 안도 현대차 관계자들과 기자 등으로 가득차는 등 법원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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