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헝그리 복서는 맞는데요. 얼짱은 아니거든요"

158cm 신장의 아담한 체구, 예쁘장한 얼굴, 야구 모자 뒤로 늘어뜨린 긴 생머리. 인터뷰를 위해 스프리스체육관으로 들어선 김주희(21·스프리스체육관)는 마치 남자친구를 찾으러 온 수줍은 여대생 같았다. 그 모습에서 발가락 뼈를 잘라내는 힘든 수술을 극복하고 WBA(세계복싱협회)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 링 위의 악착 같은 김주희를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인터뷰 시작 10분만에 김주희가 왜 ''100년에 한번 나올 법한 복서''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김주희
"이번에는 인대 수술이에요"

지난달 24일, WBA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매치에서 사쿠라다 유키(일본)에 TKO승을 거둔 김주희는 챔피언 벨트를 손에 들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의사로부터 "선수 생활은 힘들 것 같다"는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듣고 수술대에 올랐던 것이 9개월 전이었다. 다시는 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링 위에서 거둔 승리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IFBA(국제여자복싱협회)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4차 방어전을 준비할 때였어요. 많은 훈련량 때문인지 엄지발가락 발톱이 자주 빠졌는데, 당시 유난히 통증이 심했어요. 그저 내 정신력이 해이해진 거라 생각했죠.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합챔피언에 도전하나…''하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고, 퉁퉁 부은 발을 운동화에 간신히 구겨넣고는 도봉산을 올랐어요. 왕복 4시간이면 되는 산행이 두 배의 시간이 걸릴 만큼 고통스러웠어요. 악착같이 산을 내려왔을 때 발은 시커멓게 변해있었죠."

산행 다음날 김주희는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고 ''오른 엄지 발가락 골수염'' 진단을 받고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반복된 염증으로 엄지발가락 뼈가 상해 뼈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엄지발가락에 무게를 싣고 스텝을 주는 복서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수술로 인한 아픔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재활 과정이었다. 휠체어와 목발에서 벗어나 두 발로 선 것이 올 초. 그때부터 김주희는 새벽 6시 로드워크를 시작으로 웨이트 트레이닝, 요가를 비롯해 오후 6시간 가량의 고된 체육관 훈련까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재활 훈련과 복싱에 매달렸다.


정문호 스프리스 체육관장의 지도 하에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99년부터 지난 8년간 좀처럼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던 ''악발이'' 김주희가 발가락 수술 이후 재기를 준비하면서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주저앉아 수없이 울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김주희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고, 결국 15개월 만에 오른 링에서 당당히 WBA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현재 김주희의 발 상태는 80%. 발가락 뼈 수술이 완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달에는 또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아픈 발가락 통증 때문에 바깥쪽으로 발을 딛다 보니 인대가 심하게 늘어났고 결국 늘어난 인대를 잘라내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인대접합수술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 내년 봄, WBC(세계권투평의회) 타이틀 매치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수술은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주희는 담담하기만 하다.

"제 목표는 세계 최고가 아니에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되는 게 목표죠." 또 한번의 수술을 앞에 놓고도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헝그리 복서는 맞는데요. 얼짱 복서는 아니거든요"

김주희는 자신을 당당히 ''헝그리 복서''라고 말한다. 사업 실패와 이혼 후 충격으로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지 10여년. 아버지가 몸져누운 이후 김주희는 4살 위 언니와 힘겹게 생활을 꾸려왔다.

"가정 형편이 영향을 준 건 맞아요. 그러나 제가 챔피언이 되는데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건 권투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예요. 권투 할때의 스텝 하나까지도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거든요. 저는요, ''권투에 미친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기분 좋아요."


[동영상]김주희 "헝그리 복서 맞는데요. 얼짱은 아니거든요"

''권투에 미쳤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로 들린다는 김주희. 그렇다면 그가 가장 꺼려하는 말은 뭘까. 바로 ''얼짱 복서''다. "얼짱이란 말 좀 제발 쓰지 말아주세요"라며 자신은 얼짱과 거리가 멀다고 두 손을 내젓는다. 대신 정문호 관장이 직접 붙여준 별명 ''작은 거인''으로 불러달라고. 링 위에서 ''작지만 큰 존재감을 주는 거인''이고 싶다는 김주희다.

◇ 김주희 프로필

▲생년월일 1986년 1월13일
▲출신학교 문래중-영등포여고-중부대 엔터테인먼트과 2학년 재학중
▲프로데뷔 2001년
▲경력
2003년 3월29일-플라이급 한국 챔피언
2004년 5월8일-주니어플라이급 한국 챔피언
2004년 12월19일-IF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2005년 5월6일- IFBA 세계타이틀 1차 방어전 마이다 키트슈란(필리핀) 2KO승
2005년 11월12일-IFBA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 마리안 추리카(미국) 10회 판정승
2006년 4월22일-IFBA 세계타이틀 3차 방어전 쓰나미(일본) 10회 판정승
2007년 8월24일-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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