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에 대해 권한 주장할 때 비극 시작"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공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 서울대 이면우 교수

이면우
1945년 개성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인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1970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서울대학교에 산업공학과를 창설한 후, 지금까지 1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250건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에는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상아탑에만 머무는 공학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W이론의 주창자 이면우 교수입니다. 처음 W이론을 이 세상에 발표한 1992년은 세계 각국이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을 높이 평가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이면우 교수는 ''''도입 기술, 저임금,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국가 발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큰 위기를 맞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세계 경제는 고스톱 판이나 포커판과 같아서 세계 1등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면우 교수의 경고는 정확히 그 이후 사실로 드러났고 IMF 국가부도 사태라는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공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를 8월 30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벤처회사 운영 10년차, 버티기를 잘 했어

▶ 요즘에는 뉴스에서 이면우 교수님이 좀 조용하신 것 같아요.(웃음) 최근 이면우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주제나 이슈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제가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죠. W이론이다, 신제품을 만들어야한다, 가격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하고 관두었어야 하는데 독자들이 자꾸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해서 거기에 얽혀서 벤처를 하고 있습니다. 교수가 3년 동안 회사운영에 망하지 않으면 상 받을만하다고 하더라고요. 1년 안에 망한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햇수로는 10년째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한눈 팔 새가 없고 거기에 전력투자를 해야 해서, 바쁜 날은 해외로 하루에 이메일을 100통씩 보내요. 별의별 불평도 들어오고 황당한 주문도 들어오고 말도 안 되는 걸 요청도 하는데 화 내지 않고 현안문제를 1,2분 안에 풀어나가야 돼요. 편지를 1분 단위로 쓰지 않으면 조직이 커져야 한다, 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능력은 없으니까 급하면 빨리 처리해야죠.(웃음)

▶ 벤처를 운영해 보시니까 이론과 현실이 어떻게 다르던가요?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기업하는 분들이 애를 많이 쓰는구나, 월급 더 받는 걸 사회적으로 시기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는 게 첫 번째에요.두 번째는 대학과 산업이 괴리가 많은데 산학협동의 부실화가 이유가 있는 게 서로 다르거든요. 구접스러운 것은 서로 안 보고 좋은 이야기만 하니까요. 대학교수들을 보면 평생 별 탈 없이 잘 지내시는 분들이다, 복 받은 분들이다, 나도 저렇게 지낼 수 있었는데 이 판에 들어와서 말이죠.(웃음) 양쪽을 보는 거예요.

▶ 좋은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상아탑이라고 하는 거겠죠?

부담되는 이야기는 빼고 진리에 해당하는 이야기만 하면 살 만 하죠. 책임질 일은 쏙 빠지고, 난 교수니까 하고 빠져도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을 안 받으니까, 그래서 혼나고 있어요.

▶ 10년 동안 벤처를 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처음에 학생들과 같이 문화 관광상품을 했어요. 우리 같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에서 밤낮 관광지를 가면 전국이 똑같아요. 부채, 등 긁는 거, 어느 명승지를 가도 똑같단 말이죠. 왜 저렇게 하나 싶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만들기 시작해서 열 몇 개를 만들었어요. 그거 하다가 학생들에게 ''''없는 신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고 했더니 학생들이 시범을 보여 달래요. 머리 땋는 기계가 없는데 그걸 만들었어요. 특허는 4천 개가 있는데 세계 최초로 만들었죠. 그 다음에는 머리 꼬는 기계도 만들고, 요즘 만드는 건 머리를 잇는 기계에요. 머리를 한 올씩도 이어줘요. 한 번 이어놓으면 수영을 가도 되고 사우나를 가도 되고 빗질을 해도 되고, 4개월 동안 떨어지지 않아요. 머리를 감아도 괜찮아요.

머리숱이 적다든지 식구들 중에 속 썩이는 사람이 있으면 원형 탈모도 생기고 그런 쪽으로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중장년 남녀를 위한 고부가 시술이에요. 미용실에서 하면 돈을 많이 받아요. 그쪽이 요즘 호응을 받기 시작했어요. 시장에 나온 지 4년 됐는데 이제 꿈틀거리거든요. 그동안 왜 가만있었느냐고 했더니 해외 주요 바이어들 이야기가, 3년은 가만히 두고 봐야 한다, 저 놈이 언제 없어질지, 언제 야반도주를 할 놈인지, 이거 한 탕하고 튈 놈인지 그때까지는 좋게는 생각해도 꼼짝도 안 한다는 거죠.

그것만 생각하면 얼마나 한심한 이야기에요? 매달 회사 운영비는 드는데, 유럽이 좀 보수적이라서 살 사람은 3년간 일단 관망세로 간다는 게 자기들 상업전통이라는 거예요. 요즘은 감사편지도 많이 와요. 부인이 머리가 빠져서 우울증에 빠져서 바깥출입을 안 했는데 당신이 만든 기계로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는 나가자고 그런다. 식구들 저녁밥상에 웃음꽃이 피었다 등의 이메일을 뜬금없이 많이 받아요. 버티기를 잘 했구나 싶죠.(웃음)

◇ 작년에 처음으로 흑자기록, 세계 3대 브랜드로 인정받아

▶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교수가 벤처를 하는데 자금을 대는 분은 맨 정신이 아니죠. 안대주죠. 그러니까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놓고 하는 겁니다. 지금 손 선생은 불우이웃과 마주앉으신 거예요.(웃음)교수월급, 집, 신용이 다 들어갔어요. 이게 일종의 고질병이에요.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어요. 하나는 잘난 척하고 깝죽거리고 했기 때문에 도망은 못 간다. 죽거나 살거나지 작전상 후퇴는 없다. 이게 다 자업자득이죠. 아는 게 있어도 입 다물고 조신하게 지냈으면 이런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자꾸 입바른 소리를 해서 말이죠, 저 인간도 똑같은 부류구나 하는 걸 듣기 싫어서 후퇴는 없다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꼭 될 것 같아요. 망상일 수도 있는데 꼭 될 것 같으니까 되는 데까지 하다가 안 되면 말고. 그런데 지갑 사정이 안 좋아서 야반도주도 못하겠더라고요.(웃음)

▶ 신제품을 개발하시고 나서 기업에게 넘겨주시면 편하셨을 텐데요.

그게 꿈이에요. 그런데 그동안 기업의 성장과정이 잘 팔리는 것을 뒤쫓아 가는 버릇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아 보이는 제품이라도 시장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확실하냐? 그러면 네가 한 번 해보지 그러냐? 독자들이 그러니까 거기에 걸려든 거죠.(웃음)

▶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기업에 넘겨주고 본업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렇죠. 작년에 처음으로 돈 번 것 같지 않은데 장부상으로 흑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해외에 나가면 저희한테 신제품을 같이 개발하자고 제의하는 해외업체들이 생겼어요. 한국 사람한테 신제품을 개발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 격세지감이 있는 이야기거든요. 이런 이미지가 조금 더 구축이 되면 다른 분들이, 저 놈 봐라 하면서 용기를 내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또 하나 성취된 것은 세계 3대 브랜드로 인정을 받은 거예요. 이태리제가 2개 있고 저희 것이 1개 있어요. 자기네 회사 마크를 찍어주면 3천 대를 사주겠다는 곳이 많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는 못 팔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책에 썼거든요.

그 다음에 가격을 조금만 네고(Nego-협상)하자. 이것도 못 하죠. 왜냐하면 가격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제가 그랬잖아요. 전 세계의 1,2,3위 업체들이 저희들한테 왔었어요. 우리 회사 로고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그건 못하잖아요. 가격결정권을 가져야 하니까 네고 못 하죠. 그래서 제가 밤중에 스산하게 앉아서 생각을 해보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예요. 안 되는 일만 골라서 책에 썼기 때문에 그것대로 버티고 해야 하니까요. 자승자박이죠.(웃음)하지만 그러니까 3대 브랜드가 된 거예요.

가격을 하도 안 깎아주니까 세계에서 저를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요. 저 놈은 이상한 놈이라고, 그래서 쇼에 나가서 질문에 대답을 해 주면 감동을 받아요. 너무 불필요할 정도로 고마워하니까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소문에 당신이 아주 성격이 나쁘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한테 해 주는 거 보니까 아주 인간성이 좋은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돈, 위험부담, 파산직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버티거든요. 가격 안 깎아줘요. 맞든 틀리든 우리가 얼마다 하면 내는 사람들한테만 팔고 가격에 토를 달면 그냥 안 팔아요. 기업이란 이런 거다. 협상의 비밀, 협상의 기술 등 좋은 책들 많잖아요. 학생들한테 그런 책은 죽어도 읽지 말라고 해요. 왜 협상을 하느냐고, 신기술, 신제품으로 기여를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남들이 따라와야지 무슨 네고를 하냐? 협상하려고 영어 잘 배우려고 하고 영어를 잘 배우려니까 조기유학가고 가정 망가지고 아버지는 라면 끓여먹다가 죽은 지 3일 만에 발견되었다고 하고, 이게 전부 쓸데없는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 협상하지 마라, 너희가 정하면 남들이 인정해 줄 때까지는 버티라는 거죠.

▶ W이론을 이면우 교수님이 내놓으셨는데 시장에서 일을 해 보셨어도 아직도 그 이론을 주장하시는 건가요?

이론증명하려고 벤처를 시작한 거니까, 여기저기서 조금씩 이야기 듣고 타협하고 네고도 했으면 지금쯤 돈도 많이 벌었을 수 있어요. 큰 바이어들이 혀를 차면서 물러가고 그랬거든요. 악담을 하죠. 너 같이 해서 살면 기적이다. 기적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는데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어요.

▶ 교수사회에서는 이면우 교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학교 교수 되고나서부터 이제까지 주류에 있었던 적은 별로 없거든요. 나이 들어도 철이 안 든다 그렇게 보죠.

◇ 서울공대백서, 조직차원에서 보면 밀고자

▶ 몇 살 때 교수가 되셨나요?

26살 때입니다. 처음에는 교수될 생각도 없었어요. 그때 학과를 만들 때 그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교수되기가 싫어서 4개월을 도망 다니다가 당시 학장님이 집에 전화를 하셔서 한국사회에서 모교를 배반한 놈이 살아남을 것 같냐, 3년만 봉사하다가 얼른 나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런 식으로 도피계획을 세우고 들어갔는데 대학교수가 3년 열심히 가르치면 이상한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 해요. 아직까지도 못 나온 거죠.

▶ 이면우 교수님이 전공하신 게 인간공학이신데 요즘은 전공자가 많은가요?

많아요. 요즘 우리나라에 휴대폰 유저인터페이스 같은 것들이 다 인간공학과 관계있는 것들이죠. 휴대폰 성능이 복잡한데 어떻게 해야 자판을 사람들이 쉽게 쓰느냐, 이런 게 인간과학의 일부죠. 많이들 고액 연봉을 받고 가요.그때 제가 70년대에 그걸 배웠으니까 재미 보는 사람들은 30년 후인 거예요. 그런 걸 보면 헛짓 한 것은 아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요.

▶ 91년도에 서울공대백서를 발간하셨어요.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 최고 대학일 뿐이다.'''' 그때 이 이야기가 굉장히 센세이셔널해서 안기부까지 끌려가셨어요. 그때는 어떤 생각으로 말씀하셨고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없으신가요?

소위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밀고자인 셈이죠. 허약한 우리의 치부를 활자화해서 내는 사람이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냐? 대학사회가 보수적이고 선후배, 교수님들에게 토를 달면 안 되거든요. 그때 공대백서를 쓴 건 간단해요.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예를 들어 손 선생님의 월수입이 100만원인데 식구들 식비가 84만원이에요. 여기서 질문을 해 보죠. 이 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의 장래가 얼마나 밝아 보여요? 앵겔지수에요. 100만원 중에 84만원을 식비로 쓰고 16만원 가지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세 내겠죠. 당연히 문화비와 교육비는 없죠.그러면 월급 많은 회사 가라, 연봉 높은 회사 가라고 하지 않겠어요? 부모나 자식이나 사회적인 시각들이. 그게 뭉쳐서 오늘날 고소득 전문직으로 몰리는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예측이냐고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두 가지가 있어요. 서울대학교는 잘 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시면 더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방안이 있고 현실적인 문제가 이런 게 있다고 소위 다 까발리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서 구체적인 발전방안을 내는 수가 있어요. 하지만 전자에 대한 것들을 발표한 기관들은 많죠. OO백서 등 자기 기업이나 기관을 칭찬하면서 전망을 더 밝게 해 달라고 하는 건 많은데 그렇게 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웠던 건 모교를 배반하고 직장과 선배, 동료들을 배반하고 이런 이야기를 꼭 써야 되겠는가였어요.

선배 교수님 중 한 분이 ''''네 뜻은 알겠다. 서울공대, 네 이야기대로 공감한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불쑥 해 버리면 진짜 가망이 없고 나쁜 학교인 줄 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책임지겠냐? 네가 책임지겠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가 뭔데 책임을 지냐?'''' ''''나가겠습니다.'''' 했더니 ''''네가 나가는 건 관심도 없다. 이 실추된 명예 때문에 잘 될 가능성마저 막아버리면 어떻게 하냐? 재고하라.'''' 갈등이죠, 그게.

갈등이기는 한데 지식인들은 알아요. W이론, 제가 쓴 책에 있는 것을 전부터 아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에요. 다만 나서서 발표를 안 한 것뿐이지 새로운 이야기를 쓴 것도 아닙니다. 불이익도 당하고 성격이나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가까이 잘 안 하려고 하고, 그런 게 많잖아요. 표시 나는 것도 없고 규정된 것도 없는데 소외당하는 걸 느끼죠.

◇ 이공계의 위기는 수천 년 역사 속에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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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도에는 ''''이공계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다.''''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공대생들이 고시공부를 한다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많아요. IMF가 나면서 기업에서 광고, 홍보비는 안 줄였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줄인 게 연구비, 그 다음이 연구소 임직원, 그러니까 그걸 당한 분들이 학부모들이거든요. 평생 산업의 역군이잖아요. 6,70년대부터 올림픽, 월드컵 열고 날리는 데 일조를 한 혁혁한 주인공들이 얻어터져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여기는 아니라고 본다, 이거 하지 마라, 이렇게 가는 거죠. 역사를 보면 수 천 년 동안 갖고 있는 심성이에요.

옛말에 청기와 장수들을 비난하는 말이 있어요. 자기 자식한테도 안 알려준다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편협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세요. 오죽 힘들고 후회스러운 게 많으면 자기 자식한테도 안 가르쳐주겠느냐고요. 그래서 이공계 위기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썼어요. 에밀레종을 봐라. 종 납기일 독촉하지 않았겠냐, 소리가 안 난다고 하면 이해를 해줬겠느냐, 오죽 답답했으면 자기 자식을 집어넣었겠는가.

또 무영탑 전설이 있어요. 신혼부부를 떼어놓고 탑 그림자를 보고 물속에 뛰어들었어요. 신혼부부인데 초가집 하나 옆에 지어놓고 따뜻한 밥 먹이면서 해도 될 텐데 무심하게 지냈단 말이에요. 대중들은 어떻게 바뀌었나? 탑 기술자가 멋있게 보인다, 그러나 하지 마라, 탑 기술자가 되면 네 마누라 죽는다, 종 기술자 되지 마라, 네 자식 끓는 쇳물 속에 넣어야 된다, 이렇게 된 거예요.

장영실 같은 경우도 동네 관의 노비였어요. 노비출신인데 세종대왕한테 발탁이 돼서 잘 풀린 엔지니어죠. 그런데 장영실이 언제 죽었는지 날짜가 없어요.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날은 아는데 정4품까지 올라간 혁혁한 발명왕으로써 죽은 날이 없어요. 왜냐하면 문신들이 시기질투를 해서 공주가 타는 가마 손잡이를 미리 톱질을 해 놨어요. 그래서 들다가 가마가 나동그라지게 만든 거죠.

어떤 모함을 해도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싸고도니까 어떻게 하면 저 친구가 확실하게 벌을 받겠는가 했더니 왕족에게 신체적인 손상을 입히면 모반죄가 돼요. 왕이 국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가마를 나동그라지게 했단 말이죠.그래서 태형이 100대에요. 태형이 살살 종아리를 때리는 게 아니고 위에서부터 내려찍는 거기 때문에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세종대왕이 왕명으로 20대로 감해줬어요. 20대 맞고 나갔는데 역적이잖아요. 궁 밖으로 버렸는데 역적을 도와주면 그 사람도 역적이에요. 장영실이 어디를 어떻게 헤매다가 죽었는지 아무도 몰라요.이공계를 무시하고 대우를 안 해주고 착취만 하고 반대급부가 없었던 게 100년, 200년이 아니라는 거죠.

▶ 공대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장에 있으니까 승진도 어렵고 높은 사람 볼 기회도 없고 인문계가 승진할 동안 늘 기술자로만 있다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근본적인 개념이 그렇기 때문에 지방공장 가서 20년 정도 있으면 아무래도 더디죠.

▶ 만약 이면우 교수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실 것 같으세요?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웃음)다만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참 용감하신 분들이다. 이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닌데 풀겠다고 나서다니 정말 풀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이 하나이고 두 번째는 그런 건 잘 모르는데 이기적인 생각으로, 5천년 지낸 나라니까 5년 동안 망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해도 큰 탈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한 번 보세요.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나 있거든요. 마찰이 많고 격돌하고 누가 뭐라고 하면 관계없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도 막 화를 내요. 인터넷 댓글 다는 것도 보통 정성은 아닌데 몇 십 만 건씩 올라오잖아요. 못마땅한 것도 에너지에요. 이걸 분출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경제성장 몇 %를 개선하겠다, 국토를 어떻게 하겠다, 다 좋은 이야기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국민들에게 조금만 고생하면 이렇게 된다는 비전을 심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고생을 해도 힘이 나잖아요.

그게 없으니까 서로 따지기만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환자가 있는데 네가 그때 뭘 먹으라고 해서 더 나빠졌다, 그때 병원가자고 하는데 안 간 사람이 너다, 끝없이 남 탓만 하는 거죠. 점점 화가 나는 거예요. 경제성장 2%, 5%, 10%,도 좋은데 그게 능사가 아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공존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제시하는 분은 없어요. 되고나서 하려는지 몰라도 자꾸 변명하고 비난하니까 되고나서도 그것밖에 못하지 않겠는가 싶어요.

◇ 평생 ''''놈''''자 소리 안 들은 「어머니의 특별 교육법」

▶ 해방둥이세요. 고향이 개성이신데 언제 월남하셨어요?

1.4 후퇴 때 내려왔어요. 그때가 5살이었죠.

▶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으세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게 강 위에 철길이 있었는데 난간 사이에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여요. 거기를 건너가던 생각이 나요.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버님은 한국은행의 전신인 식산은행에 다니셨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대한부녀회라는 것을 만드실 정도로 대학교도 나오시고 이를 테면 신여성이셨죠. 여성권리, 여성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어요. 두 분 다 밖으로 도시는 분들이라 저는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은 적이 별로 없어요.(웃음)

▶ 형제는 어떻게 되세요?

저 혼자입니다.

▶ 부모님의 교육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교육이 있으세요?

아버님은 5살 전에 헤어져서 큰 기억은 없어요. 난리 통에 아버지는 먼저 월남하시고 저와 어머니는 나중에 내려왔는데 소식이 없었다가 나중에 만났는데 다른 터전이 생기셨더라고요. 그런데 두 분이 아주 좋게 해결을 하셔서 저한테도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별로 기억에 없는데 엄마 쪽을 가리켰대요.

어머니의 교육이 특별하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지금까지 평생 ''''놈''''자 소리를 한 번도 안 들었어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존댓말만 안할 뿐이지 어릴 때부터 예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다 들어주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제 자전거인 미야다 자전거라고 폼 나는 게 있었어요. 그걸 갖고 싶은데 중학교 들어가면 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못 마땅해 있는데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 어머니가 너는 외아들에 공부도 잘 하겠다, 사달라고 해라, 떼쓰면 해주실 거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압력이 부족했나 싶어서 자전거를 몇 월 며칠까지 사주지 않으면 가출하겠다고 편지를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놔뒀어요. 그런데 별 말씀이 없으세요. 그래서 친구 집으로 가출을 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다는 걸 음으로 양으로 신호를 보내서 소재파악은 되셨을 것 같은데 찾지를 않으세요. 그런데 친구네 집에서는 하루 지나니까 밥을 따로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식구들과 같이 못 먹고 마당에 나가서 먹으니까 세상이 무섭구나,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이 집을 엄벌에 처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잠도 마루에서 자라고 하고. 지나고 보니까 어머니와 친구네 어머니가 연락이 되셨던 거예요.

일주일 만에 제가 마지막 협상카드를 꺼냈어요. 이제라도 사준다면 들어갈 수 있다고.(웃음) ''''자전거 때문에 나갈 거면 앞으로도 나갈 일이 많을 거다. 들어오지 마라.'''' 그래서 백기를 들고 들어갔죠. 그때 밤하늘을 보는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는 거예요. 고아원도 나보다는 사정이 좋은 거 같아요. 나는 자전거만도 못한 자식이구나, 도대체 내 가치는 얼마냐는 등. 어린 나이에 갈등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운 게 있다면 한 번 소신을 가지면 끝까지 버텨라. 또한 자전거는 중학교 때 사주겠다고 하면 중학교 때 사주는 거지, 네가 가출한다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주는 것은 아니다, 몇 안 되는 참패를 당한 것 중의 하나에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팅을 보통으로 하면 안 될 거다, 그걸 배웠던 것 같아요.

홀어머니에 외아들이잖아요. 반에서 공부도 잘 하고 또 동네주변에서도 저런 애를 자전거를 안 사주면 누구를 사주냐는 성원의 목소리도 있고 하니까 이것 봐라, 했다가 혼났죠.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셨어요. 그 이후 자전거 이야기가 나와도 그때 일은 절대 말씀 안 하셨어요. 지나간 일은 절대 말씀을 안 하세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금 생각을 해야죠. 어디까지 배팅을 할 것인지, 그런 걸 가르쳐주신 것 같아요.

한 번은 어느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남으라고 하더니 내일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세요. 세계 각국의 수도를 알아맞히는 건데 이상한 나라들이 많아요. 귀여워서 주신 것 같은데 그 다음 날 시험문제에 답을 안 썼어요. 비겁한 것 같더라고요. 아는 나라만 쓰고 나머지는 백지로 냈어요. 점수가 나쁘니까 담임선생님한테 야단맞고, 그 선생님한테는 요놈, 참하고 성실해서 가르쳐주었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느냐고 야단맞았죠. 어머니께는 각국 수도가 다음 달에 배우는 건데 미리 나와서 점수가 안 나왔다고 그러면 시간이 안 맞았구나 하시면서 인정을 해주셨어요. 공부하라는 말씀도 잘 안하셨어요.

▶ 굉장히 고집 센 학생이셨을 것 같아요.

고집을 강변하지는 않지만 아니다 싶으면 잘 안 했어요.

▶ 생활비는 아버님이 주셨어요?

아니요. 어머니가 생활능력이 있으니까 부모님이 헤어지실 때 돈 이야기가 한 마디도 없었어요.(웃음) 달라고 했으면 받으실 법도 했을 텐데 그런 말씀이 없으셨죠.

▶ 그 이후에 아버님을 못 보셨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가끔 어떤 분이 골목에 와서 사진을 찍어가는 건 의식을 했어요. 누군지는 모르니까. 나중에 봤더니 사람을 보내서 근황을 사진으로 찍고 대학졸업식 때도 오셔서 구경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자라면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어머니가 편안하게 해주니까 사춘기 때도 고민하지 않았거든요. 아버지를 나쁜 분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좋은 분하고 사시니까 좋겠다고 생각한 정도지 우리를 버리고...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웃음)어머니는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봐도 좋다고 하시는데 그러고 싶지도 않았죠.

◇ 부모는 농사꾼, 작황관리에 따라 지도자가 될 수 있어

▶ 세계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어머니 10계명을 만드셨잖아요. 그걸 보면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큰 것 같아요. <지도자를 대하듯이 자녀를 깍듯이 예우하라> 그리고 <순종하는 자녀보다 고집 센 자녀를 집중 지원하라>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이 순종하기를 바라잖아요.

자식이 예쁘고 뭔가 더 주고 싶죠. 기어코 저 고집을 꺾어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순종하는 자녀가 본의 아니게 배우는 지혜가 뭔가 하면 가까이 있는 실력자 말을 잘 듣는 게 인생에 이롭다는 거예요. 순종하고 칭찬을 받다 보면. 학생 때는 부모가 실력자죠. 결혼하면 배우자가 실력자죠. 그래서 순종하던 효자가 결혼하고 나서 부모님을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아요. 제 마누라 밖에 모른다, 제 남편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가까운 거리의 실력자 말을 듣는 게 이롭다는데 부모님은 떨어져 있고 동생들은 더 떨어져 있으니까 여기다 싶은 거죠. 그게 가정교육이 형태를 바꿔서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고집 있는 자녀를 인정해 주면 얘는 주관이 있으니까 다소 역경이 있고 자기가 힘들더라도 그걸 추진하려고 하겠죠. 그러고 나서 결혼을 해도, 예쁜 아내 혹은 멋있는 남편을 만나도 자기 기본은 있지 않겠는가, 그게 소위 고집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하는 걸 보면 이 자녀가 지도자가 될지 안 될지 아는데 재질이나 재능도 문제지만 주변이 문제에요.

부모는 농사꾼이에요. 품종이 좋은 씨앗이 있는데 이 농사꾼이 작황을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지도자 재목이 될 사람이 수능 때문에 매도되어서 좌절할 수 있고 또 부모님이 나서서 저주를 하잖아요. 너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뜻이 뭐예요? 너는 못 산다, 누가 널 받아주겠냐, 넌 사회의 낙오자다, 이런 걸 아침저녁으로 해 줘요. 천일기도 같아요. 그랬더니 조물주가 감동받아서 그대로 해 주는 거예요. 하도 부모가 원하니까 네 뜻을 들어서 네 자식을 그렇게 해주겠다, 이렇게 되는 거죠.

▶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3남매에요.

▶ 이면우 교수님은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궁금해요.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까 산증인이시잖아요. 어렸을 때 하던 짓거리와 비교했을 때 어머니가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너보다 낫다.''''였어요.(웃음) 제가 보기에도 제가 그렇게 자랐으니까 다른 생각은 없어요. 공부를 못했다고 뭐라고 한다든지 대화를 할 때 표정관리를 한다든지 그런 것 없이 늘 친구같이 지내요.

막내가 중학교 때인가 전교 석차가 14등하다가 19등으로 떨어졌어요. 성적표를 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14등하다가 4등이 되어도 시원치 않은데 19등으로 떨어졌냐고 했어요. 야단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랬더니 막내아들이 소파에서 발로 내 정강이를 긁더니 아빠, 중2 때 성적표 좀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어머니가 다 모아두셨어요. 석차가 좋고 나쁘고 선별해서 두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 놔두었으니 있잖아요. 갖고 와서 봤더니 반에서 24등을 했어요. 그러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내 성적보다 잘했으면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거죠. 그럴 때는 졌다고 그래야죠. 그게 인간적인 관계이기도 하고요.

▶ 자녀를 키우시면서 과외를 시키거나 유학을 보내지는 않으셨어요?

아주 안 한 건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한 건 시켰어요. 막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배낭 메고, 제 미국인 친구 집에 한 달간 가 있었어요. 영어 한 글자도 모르고 혼자 갔어요. 인생살이의 기본은 영어로 해야 하잖아요. 저쪽이 못 알아들으니까. 배고플 때는 뭐라고 하는지 연구하고 한 달 정도 지내고 오더니 영어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전혀 낯선 환경에 떨어져서 살아남는 걸 배웠어요. 그게 오래 가요. 발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문법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시험을 치면 높은 성적이 나오는 건 아닌데 영어는 자기 몸의 일부라고 생각을 해요. 영어에 대한 공포감 없고 많이 배운 거죠. 그것도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낸 거예요.

세상은 트레이드라는 걸 배웠어요. 미국인 친구가 말 빨리 배우라고 그 또래 친구들이 있는 여름캠프에 넣어줬어요. 그 여름캠프에 난데없이 노란 애가 하나 와 있는데 말을 한 마디도 못하니까 그게 왕따거든요. 왕따라는 게 별게 아니에요. 그런데 얘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면 피아노를 잘 치니까 피아노를 연주하면 대우가 달라지고 수영을 했더니 수영을 가르쳐달라고 좇아오는 사람이 있고 또 컴퓨터야 집에서 많이 만지작거려서 게임으로 성적이 잘 나오니까 초청도 받고. 그래서 물물교환인 거죠. 재능이든 대화든 주고받을 게 있으면 산다는 생각을 해서 나중에는 거기서 말 타는 거, 활 쏘는 거 트레이드를 해서 배운 거예요. 내가 너 컴퓨터를 가르쳐 줄 테니까 나 말 타는 거 가르쳐 주라. 그러면 주말에 말 농장에 가서 온 가족이 나서서 가르쳐 준대요. 그렇게 해서 다 마스터 하고 왔어요.


▶ 지금은 자녀분들이 어떤 일을 하나요?

큰 애는 락을 하는데 며칠 후에 CD가 나와요. 작사, 작곡을 하는데 이번에는 보컬까지 했어요. 전에 나온 건 유럽차트에도 올라갔어요. 그냥 습작 수준은 넘어섰고 해외에서는 인정을 받아요. 이번에 나오는 CD 때문에 신나서 돌아다니고 있고 딸아이는 국악을 전공하고 개 미용사 하다가 시집갔어요. 애 둘 낳아서 그쪽에서 정신을 못 차려요.(웃음)

그리고 막내는 미국대학교 입학허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유학을 가려는데 제가 하는 벤처회사에 와서 이렇게 보더니 자기가 조금만 더 있으면 좋아질 것 같다고 본인이 유학을 연기했어요. 네 신세 져서 회사 살릴 처지는 아니라고 했더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떠나서 가끔 뒤가 당기는 것보다 이것 좀 바로잡아놓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일 잘해요.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소속이나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비극이 시작되는 거예요. 자식을 인격적으로 존중을 해줘야죠.

◇ 학력위조는 내, 외부의 음모가 빚은 합작품

▶ 이면우 박사님은 미시간 대학을 나오셨잖아요. 거기서 학교를 빛낸 100인 중에 뽑히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몰라요. 해외 모교에서 상 받는 게 대단히 영광스러운 거죠. 왜 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잘 풀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요즘 사회에 불고 있는 학력위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애견 훈련소를 보면 가르치는 종목이 몇 가지가 있어요. 사냥개, 병든 분들 옆에 있어주면 치료효과가 난다는 치료견, 맹도견, 애완견, 또 반가워하지도 않는데 턱 앉아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관상견, 사역견, 산 속에 사람 찾아주는 구조견, 테러 탐지견도 있죠. 서커스견도 있고 복날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력견도 있고요.

그런데 개의 특성이나 재질에 따라서 교육하는 대상, 내용, 방법이 전혀 달라요. 개들도 이렇게 키우는데 개들보다 훨씬 중요한 자녀들을 키우는 걸 봤더니 개로 비유하자면, 온갖 종류의 개들을 한데 몰아넣고 획일적인 잣대로 당락, 탈락, 우등, 열등을 가차 없이 구분해버려요. 그리고 부모, 교사, 학원, 사회가 음모가 일치가 되었어요. 집단적으로 조화를 이뤄서 매도를 해 버려요. 넌 안 된다고. 그러면 사냥개를 아무리 쥐어 패면서 가르쳐봐야 애완견 같이 되겠어요? 또 애완견한테 아무리 강훈련을 시켜봐야 마약탐지견이 되겠어요? 여기에 또 음모가 있어요.

국가는 교육에 별 관심이 없어요. 국가의 2,30년 후에 대한 걱정을 하는 지도자는 얼마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교육을 그런 식으로 내버려두지 않겠어요? 부모님도 자녀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아요. 말로야 여러 가지를 걱정하고 목돈을 쓰는데 주변 체면에 더 신경을 쓰시는 것 아닌가 해요. 그 다음에 돈을 많이 집어넣음으로서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수준을 판정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내 할일 다했으니 자녀한테 매도를 하거든요.

얼마 전에 서초구에서 문화회관을 지었다고 강의를 와 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어요. 자녀가 서울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 손을 들라고 했더니 쭈뼛거리면서 얼마 안 들어요. 그래서 이거 왜 이러냐, 다 아는데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대답하시라고 했더니 1천 명 중에 80%가 손을 들었어요. 이 중에서 서울대학을 나오신 분 손 좀 들어보라고 했어요. 한 4,50명 들었어요. 자기들은 안 나오고 자식들은 그렇게 가라고 하느냐고 인간성이 상당히 의심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완고해서 못 갔다, 삼촌이 자기 나온 대로 가라고 해서 못 갔다, 다 좋은 멘트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거기를 안 나와서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좀 들어봐라. 마음속으로는 서울대학 나온 사람보다 내가 더 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오늘 집에 가서 반성문을 쓰고 자녀들 앞에 사죄를 해라. 내가 그 동안 허상에 시달려서 너희보고 여기를 가라고 했는데 이제부터 그 얘기 없다, 인간적으로 교류하면서 살자고 해라.'''' 반은 우스갯소리로 설마 할까 싶었는데 나중에 전화를 대여섯 통 받았어요.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었대요. 화합이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러니까 개만도 못하게 가르친다는 거죠. 그리고 부모님들이 자녀 키우고 살림 사느라고 교양을 그때마다 흡수는 못 하세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무식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알고 있던 것대로 하고 자식들한테 건건이 강압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예를 들어서 어느 자녀가 농구하고 싶다고 하면 제일 먼저 부모가 저주를 한단 말이죠. 넌 키가 작아서 안 된다, 아무나 하는 건줄 아냐? 등등. 온갖 방해공작을 다 할 테니까 당연히 안 되겠죠.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요즘 가장 유망한 벤처가 스포츠마케팅이에요. 시들한 농구단을 구입해서 선수 몇을 영입해서 실적이 좋아지면 주식 오르듯 그 농구팀이 천정부지로 올라요. 그러면 팔아요. 금융가나 벤처보다 더 벌이가 좋은 게 스포츠마케팅이에요. 농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 부모하고 자녀하고 봐야 해요. 키가 작은 경우에 관여하는 방법은 뭔가, 선수가 아니면서 하고 싶은 분야는 뭔가를 보라고요.

지난번에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줬어요. 아무거나 52가지씩 주변사업을 적어와 보라고. 농구하면 선수들밖에 생각을 못 하는데 52가지씩 적으면 할 게 무지하게 많아요. 개들도 종류별로 교육방법이 틀리니 개보다도 귀중하기 이를 데 없는 자녀들을 일주일에 한 건씩만 생각해 보세요. 얘가 농구를 하고 싶다는데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농구에서 찾으면 52개가 나오는 거예요.

◇ 대학 4년 중 3년을 꼴찌

▶ 이면우 교수님도 열등감이 있으세요?

대학교 때 4년 중에 3년을 꼴찌를 했어요.(웃음) 제 밑에 두어 명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아예 학교를 안 나오니까 등수로 따질 게 안 되죠. 공부 안 하고 바쁜 일 많아서 꼴찌를 했더니 주변의 저주를 당할 재간이 없어요. 분발해서 성적을 높이는 것도 시도해 봤더니 또 웃어요. 개발에 땀 났다고. 나중에 대학원을 간다고 했더니 같이 듣던 30명 학우가 일제히 잔디밭에 나뒹굴면서 웃었어요. 코미디라고. 또 미국유학 간다고 했더니 배 아파하더라고요.

꼴찌하면 분한 게 많아요. 꼴찌들한테 불필요한 억울한 사연이 있다는 건 아니고 열등감은 미국 가서 공부하다가 진짜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보잖아요. 어느 날 시험을 치는데 한 친구가 5분 만에 나가요. 시험문제를 봤더니 때려죽여도 이건 5분 안에 못 써요. 나가는 사람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면서 자식, 수업시간에 깝죽대더니 사실 별 거 아니었구나, 백지 내고 나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봤더니 97점을 받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쟤가 안 하는 쪽으로 가야 되겠구나. 그게 실질적인 거죠. 그 친구들이 잘 못하는 쪽을 찾아야 해요.

▶ 이면우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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