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아나키스트'''',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등의 영화에서 열연한 배우 정준호….
하지만 그의 진짜 매력은 외모에 있지 않고 따스한 가슴,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심성에 있습니다.
주말이면 ''''사랑의 밥차'''' 끌고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앞치마 두르고 밥주걱 손에 쥐고 사랑을 듬뿍듬뿍 퍼주는 배우…!
불편한 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자…!
내 이웃, 내 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 모든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희망을 품은 사람…!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일에 열심인 배우 정준호 씨를 8월 6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재미, 웃음, 감동의 삼박자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 내일 영화 ''''사랑방 선수와 어머님''''이 개봉이죠? 사랑방 선수는 정준호 씨일 테고, 어머니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김원희 씨가 어머니로 나와요. 김원희 씨가 주인이고 제가 손님으로 나오니까 아마 대략 짐작이 가실 거예요. (웃음)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 선생님의 단편으로 옛날에 최은희 선생님과 김진규 선생님이 만들어서 대 히트한 우리나라 명화예요. 완고한 시어머니를 모시는 젊은 미망인과 사랑방에 손님으로 온 선생님과의 애절한 사랑 사이에서 어린 딸 ''''옥희''''가 메신저 역할을 했던 영화인데, 계란장수로 나오는 김희갑 선생님과 일하는 아주머니로 나오는 도금봉 선생님의 감초 연기도 아주 일품이었어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저희 작품은 본성은 착한데 뺀질하고 사기성 있는 서울 청년이 아버지의 사채를 갚기 위해 돈을 구하러 시골로 내려와 민박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저도 선수로 나오지만 김원희 씨는 더 괄괄한 인물로 나와요. 바닷가에서 술집을 하는데 15살에 옥희를 낳은 미혼모로 등장하고 원작의 ''''옥희''''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15살의 아주 까칠한 사춘기 여고생으로 나와요.엄마와 옥희가 저를 가운데 놓고 사랑싸움이 벌어지죠. 실제로는 19살인 고은아 라는 친구가 옥희 역할을 맡았는데 아주 맛깔스럽게 연기를 했어요.
▶ 나중에는 엄마와 옥희에게 잘 보이려고 마빡이 춤까지 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웃음)
사실은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옥희 엄마의 통장에 1억이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아버지의 사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10단계의 작전을 펼쳐요. 옥희에게 생일이 언제냐,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 물어보다가 결국 노래방을 가게 되는데, ''''도전 1,000곡''''을 도용해서 4자리 숫자의 노래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요. 100곡을 부르게 했는데도 결국 비밀번호를 알아내지는 못하고 그런 과정에서 옥희 앞에서 춤도 추고 그랬던 거죠. (웃음)
▶ 저는 제목만 보고도 정말 웃기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와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진한 감동도 있어요.어머니를 짝사랑하는 촌스러운 시골 청년 임형준 씨가 그렇게 충고를 했음에도 결국 모든 것을 다 주었던 어머니는 혼자가 되고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신세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사회 때마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저도 제 영화를 보고 잘 울지 않았는데 그 장면에서는 눈물이 났어요.
영화 속에도 내용이 나오지만 살다 보면 우리가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고 그런 일들이 많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못 믿고 경계하면서 산다면 불행한 일이에요. 그런데 속는 사람은 계속 속게 되어 있는 것이 순진하고 착하기 때문에 속고 나서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면 정겹고 또, 정주고 그러거든요.
▶ 고향이 시골이신데 홍보대사 활동도 많이 하시죠?
충청남도 예산입니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우리나라를 살리는데 피와 땀을 바친 우리나라 광복회에 들렸다 왔어요. 독립투사 유가족과 후손들이 그 단체를 만들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데 홍보대사를 해달라고 해서 위촉을 받고 왔습니다.
◇ 스무 개의 홍보대사, 스무 개의 일기장
▶ 지금 홍보대사가 몇 개예요? (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 20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홍보대사 일이 촬영시간과 스케줄을 쪼개서 하는 일이면 못 할 텐데 주변의 좋은 분들이, 좋은 취지로, 좋은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하면서 보람을 얻습니다.
▶ 다 외우세요?
다 외우죠. 사실 홍보대사를 하면서 시간을 많이 내서 참여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더 많이 돕고 싶은데 바쁘다 보니까 정말 죄송해요. 그래도 감사하다고 하시니까요.
▶ 젊고 건강하기는 하지만 자기 본업도 있는데 저 일을 어떻게 다 감당하면서 사나 싶어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연기, 사업, 홍보대사, 모임, 봉사,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축구단 단장 등 그 많은 일을 다 하느냐고 하세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일이 많아도 제 할일 다하고 놀러도 다니고 그래요.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요.
▶ 몇 시에 일어나세요?
아무리 늦게 자도 보통 6시 반이나 7시면 일어나요. 혼자 객지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까 20대 때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러면 하루가 너무 짧더라고요.그래서 30대 때부터는 음주량도 줄이고 친구들과 만나도 조금 일찍 헤어지고 하면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어요. 일어나서 서너 종류의 신문을 보고 브리핑 룸에서 매니저들로부터 브리핑도 받아요. (웃음)브리핑 룸이라고 하니까 조금 웃긴데 거실에서, 혹시라도 과음을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매니저들로부터 전날의 이야기를 다 듣는 거죠.
▶ 보통 몇 시에 잠을 자나요?
제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어요.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왔는데 일기라기보다는 하루일과에 관한 메모에 가깝죠. 어렸을 때 이사를 가면 어머님이 종갓집 장손인, 아들이 아끼는 것이라고 빨간 보자기에 곱게 싸곤 하셨어요. (웃음)
◇ 세심하고 꼼꼼한 정리정돈의 달인이 되기까지
▶ 꽤 많겠어요.
일 년에 한 권 정도니까 한 20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10년, 15년 된 빛바랜 일기를 서재 가운데에 놓고 겉에 연도를 붙여서 한해, 한해 갈 때마다 빼곡히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혹시나 잊고 가는 것은 없는지... 또, 옛날에 만났던 친했던 사람들 중에 배우생활하면서 소홀히 했던 사람은 없는지... 가끔 너무 친하게 지냈던 사람인데 연락을 안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하면 정말 반가워하세요.
▶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세요?
터프하고, 쿨하고, 남성다운 것과는 거리가 좀 멀고 세심하고 정리정돈을 잘해요.혹시나 과음을 했다고 해도 집에 들어가서 옷 정리하고, 샤워하고, 차 한잔하고, 앉아서 음악 한, 두 곡은 꼭 듣고 자요. 그러니까 저 자신에게는 좀 피곤하죠.
▶ 좀 완벽주의자기도 하겠네요?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왜 그렇게 됐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집에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늦게 들어가서 깨워달라고 하고 그냥 잠을 자기도 할 텐데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와 혼자 자취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 스스로 아무리 피곤해도 내일 아침 7시에 약속이 있다면 6시에 일어나는 정신력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도 정말 불안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면 자명종시계를 안 써요. 혹시나 몰라서 맞춰놓고 자도 한 시간 전에 눈이 떠지는 거예요. 그만큼 긴장을 하고 사는 거죠.가끔 혼자 여행가고 혼자 가만히 있을 때는 정말 편안히 쉬어요.
▶ 어느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장가가겠다는 선언을 하셨더라고요.
목표예요. (웃음)
▶ 누군가를 목표에 두고 하시는 얘긴가요? 아니면 막연한 계획인가요? 정준호 씨 같은 완벽한 신랑감이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많이들 궁금해 하세요?
성공을 하면, 뭔가 일을 이루면,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짐을 지우기 싫으니까... 그런 생각에 압박을 받다 보니까 남들 연애하고 결혼할 때 저는 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런데 얼마 전에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야유회를 갔는데 다들 아이들 기저귀 갈아주고 아내 설거지 도와주고 아옹다옹하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들을 보니까 부럽더라고요.
배우로서의 삶, 사업가로서의 삶,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남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이룬 가정을 나는 왜 이루지 못했을까..... 그래서 올해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를 끝으로 활동을 좀 쉬고, 좋은 분들도 몇 분 소개 받았는데 그중에서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생길 것 같아요. 좋은 느낌이 올 것 같아서 마음 놓고 연애를 하려고요.
▶ 연애도 계획을 세워놓고 해야 하나요? (웃음)
여태까지는 일하다 시간이 나면 잠깐 만나고 그랬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일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주일만 쉬어도 괜히 뒤처지는 것 같고 일이 막 하고 싶고, 한 달을 쉬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 같아요. 일중독이죠. 그러다 보니 장가를 못 가서 이번에는 확실히 하려고 해요. (웃음)
▶ 얼마 안 남았어요.
음력까지 쳐서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웃음)
▶ 부모님은 예산에 계신가요?
네, 저희 형제가 3남 1녀인데 장남인 저만 빼고 전부 결혼했어요.
▶ 게다가 장손이잖아요. 충남 예산이면 굉장히 완고한 동네 아닌가요?
그런데도 저희 부모님은 상당히 개방적이셨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워낙 지극하시다 보니까 자식이 원하는 데로 하고 싶은 대로 해주셨어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는 것도 굉장히 큰 효 중의 하나거든요. 사실 저는 눈이 멀어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려면 빨리 성공하고 더 잘돼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어요. 과묵하신 아버님이 한번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너무 남을 위하는 마음이 강해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이 선물을 사다주면 그 선물을 또 다른 친척들이 와서 갖고 싶다고 하면 다 줬어요. 어렸을 때부터 실속이 없다는 말을 들었죠. (웃음)밥 먹을 때도 얘들이랑 놀다가 열 명이고 집으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할머님, 어머님이 큰 밥상에 차려주시고.... (웃음)
▶ 학생 때도 그렇게 잘 생기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구선수를 했기 때문에 키도 크고, 생긴 것도 코가 크고, 선이 굵었어요. 그때부터 러브레터 같은 것을 받기 시작해서 한 반에 거의 안 받아 본 여학생이 없었어요. 동급생부터 선, 후배들까지 많이 좋아해 줬어요.
▶ 공부는 어느 정도 했어요?
중간 정도 했고 할아버님은 제가 장손이라 공무원이나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라셨어요.그래서 할아버님 말씀 때문에 운동도 그만두고, 중학교 때는 공부 좀 하나 싶었는데 음악에 빠졌어요. 삼촌이 비틀즈를 비롯해서 음반이 굉장히 많았어요. 친구 6명이 하나가 되자고 ''''동그라미''''라는 보컬그룹을 만들었는데 중3이고 청소년기라 개성이 강해서 의견대립으로 깨지고 뭉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1년도 안 가서 깨졌어요. (웃음)
◇ 초등학교 3학년부터 러브레터 받기 시작해
▶ 지금도 동그라미 멤버들을 만나세요?
가끔 만나서 음악이야기도 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하지요.
▶ 여학생들에게 그렇게 많은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본인이 써서 준적은 없어요?
조금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때는 학교에 가면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학교 창문에 여학생들이 제 등교시간에 맞춰서 저를 보려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규율부장이 빨리 뛰라고 하는데, ''''맞을 때 맞더라도 폼생폼사''''다 보니까 다리에서 땀은 나지만 태연한 척 걷다가 여학생들 시선이 사라지는 순간 뛰는 거죠. (웃음)
▶ 영화 ''''두사부일체''''에 그런 것들도 참작이 됐겠어요.
감독님과 학창시절 추억을 이야기했더니 영화 속에 약간 넣은 것도 있지요.
▶ 배우가 될 생각은 언제 한 건가요?
사실 저는 배우가 되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사범대에 가서 여고나 여중에 가서 체육선생님을 하고 싶었어요.
▶ 여고 배구 선생님 했으면 학생들이 배구 못했을 거예요. (웃음)
아마 전부 다 대학진학 어려웠을 겁니다. (웃음)그 꿈을 꾸면서 사범대에 도전했는데 떨어지고 약간의 방황을 하면서 재수를 하다가 대학로를 가게 됐어요. 대학로의 연극과 공연문화, 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됐는데 수염도 기르고, 야전잠바에, 선술집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있는 모습들이 마치 제임스 딘처럼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에 열흘을 대학로에 나가면서 사랑도 알게 되고, 연극을 해보자 해서 연극을 시작했죠.
▶ 첫 작품이 뭐였어요?
기국서 대표님의 76극단에 들어가서 연출자로 유명한 박근형 씨가 연출한 동학혁명이야기를 다룬 ''''아스피린''''이라는 작품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때가 아마 89년이었을 거예요.
◇ 대학로를 통해 알게 된 연극과 사랑
그때만 해도 썼었죠. 어렸을 때부터 충청도에서 자랐으니까 사투리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사실 연극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걸림돌이 됐던 것이 사투리였어요. ''''이랬슈, 저랬슈''''가 아니라 억양에서 나오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아침마다 볼펜을 입에 물고 고치려고 연습하고 표준어 쓰는 사람과 계속 대화하고 그랬죠.
연극을 하다가 군대에 갔다 와서 MBC시험을 보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95년에 공채로 들어갔는데 그때는 공중파 방송에서 1년에 1번씩 정기적으로 공채연기자를 뽑을 때예요.
▶ 그때 몇 분이나 들어가셨어요?
남자가 7명, 여자가 17명이었던 것 같아요. 동기로는 이성재 씨, 박용우 씨, 이종수 씨, 조미령 씨 등이 있고, 바로 1년 위 선배가 안재욱 씨이고, 그 위의 선배가 차인표 씨, 장동건 씨예요.
▶ 신인 탤런트인데 주인공을 맡았다고 들었어요.
연수기간 두 달간은 연기를 시키지 않는데 연수 끝나기 일주일 전에 국장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주말연속극 할 생각 있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거절했더니 남자가 자신감이 그렇게 없으면 어떡하느냐고 혼내시면서 해보라고 하셔서 하게 된 것이 ''''동기간''''이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연출을 맡은 장수봉 감독님이 저에게 숙제를 내주셨는데 드라마의 배경이 1970년대의 고즈넉한 시골의 아름다운 마을이라며 고향에 그런 곳이 있으면 비디오에 담아오라고 하셨어요. 마침 예산에 있는 예당저수지가 생각났어요. 우리나라 호수로 치면 크기로는 한두 번째 안에 들어가는 아주 큰 호수인데 그 저수지의 나지막한 마을에 아주 예쁜 집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마을을 찍어서 보여드렸더니 우리가 찾던 곳이라며 농담처럼 하셨던 주인공을 시켜주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저희 고향인 예산에 금의환향 했고, 신인으로는 파격적으로 한 방송국의 간판드라마인 주말연속극에 주인공을 맡으면서 이영애 씨, 김지수 씨, 전인화 선배님, 선우은숙 선배님, 이대근 선생님, 한인수 선생님과 같이 출연을 하게 됐죠.
▶ 그런데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죠?
경쟁프로그램인 ''''첫사랑''''이 시청률 56%가 나오던 때라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상대가 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5개월 예상했는데 3개월 만에 조기 종영을 했죠. 감독님께 감사한 것이 선배님들도 많으셨는데 제게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조기종영을 알려주셨어요. 신인이라 조기종영의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걱정해 주시고 배려해주시고 그러셨죠.
▶ 그 이후로 영화는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조기 종영 후에 또 기회를 주셔서 드라마를 하는데, 또 조기에 종영됐어요. 주변에서 말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너무 감사하죠. 아마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아껴주신 것 같아요. TV도 좋지만 스크린에서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98년 겨울의 드라마를 끝으로 ''''아나키스트''''로 스크린에 데뷔를 했어요.
◇ 두 번의 조기방영 꼬리표를 떼고 영화배우로 거듭나기
▶ 정준호 씨 나온 영화는 대부분 히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몇 편이나 찍으셨나요?
18편을 했어요. 잘 된 것도 있고 잘 안된 것도 있는데, 그래도 대체로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는 작품 속에 제가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살죠.
▶ 저는 정준호 씨 영화중에 ''''공공의 적2''''를 보면서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저렇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나... 잘생겨서 더 얄미운 거예요. (웃음)
강우석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면서 ''''이 역할은 너무 얄밉기 때문에 정말 얄미운 인상을 가진 사람이 이 역할을 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너는 인상이 선하니까 이 역할을 해도 괜찮을 거다.'''' 그러셨어요. 여담입니다만, 감독님이 ''''너 이거 하고 광고 다 떨어질지 모른다...''''며 걱정하셨어요.실제로 이성재 씨 같은 경우도 ''''공공의 적1''''을 하고 부모님을 죽인 패륜아라고..... 저 같은 경우도 악질에 지능범이잖아요.
▶ 그래서 광고 섭외가 떨어졌나요?
아니오. 오히려 더 많이 들어왔어요. (웃음)
▶ 그런 바쁜 연기활동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해요.
''''사랑의 밥 차''''를 만들거나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분들 때문이었어요. 우리도 교통사고 등으로 언제든지 팔,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될 수도 있거든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한 치 앞을 모르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이태원의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어떤 휠체어를 타신 분이 오셨어요.
2층이라서 두 분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오셨는데 ''''밥 한 끼 먹기 힘들다.''''고 하시는데 순간 드는 생각이 장애인의 편의시설에 대한 배려 없이 우리는 우리만 좋은 데로 살아왔구나 싶은 거예요.
그분들은 돈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가서 먹을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식당에서도 잘 안 받아주고요.
우리는 앞으로만 나갈 줄 알았지 이런저런 어려움을 가지고 사는 분들을 간과하고 살았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같이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들이 나서서 홍보하고 알리자고 아이디어를 냈던 것이, 저와 ''''사랑의 밥차''''를 같이 운영하는 아는 형님께서 본인이 음식을 잘하니까 차를 개조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밥을 해주자.... 그래서 시작된 것이 ''''사랑의 밥차''''예요.
▶ 지금 몇 년 되셨고 차는 몇 대인가요?
5년 됐고 차는 2대입니다. 그 안에 주방시설이 다 돼 있고 한 번에 150명의 식사가 가능합니다. 밥에 국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분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어떤 분은 한식, 어떤 분은 일식, 양식, 또 아이스크림 가게, 과일가게 하시는 분들이 와서 음식을 해주시는데 평범한 음식이 아니라 스파게티, 삼계탕, 전복요리 등... ''''사랑의 밥차''''에 그냥 밥 한 끼 먹으러 오셨다가 깜짝 놀라서 드시고 가세요.
저번에 선생님도 오셨지만 금호아시아나에서 바자회에서 얻은 성금, 거액을 아름답게 쓰라고 기증을 해주셨고, 승무원분들과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직접 시흥의 장애인분들 300명을 초청해서 음식도 해드리고 그랬어요.
◇ 정치든 뭐든 하고 싶은 의욕이 있으면 떳떳하게
▶ 그런 것이 시작되면 사람도 모이고 기업도 모여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저희는 십시일반 제 호주머니와 주변의 사람들로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을 비롯해서 많은 단체에서 지원을 해주시겠다고 문의 전화가 와요.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자식이 있는 부모님들이 자식의 봉사활동 할 수 없냐고 의뢰하세요. 특히 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살다 보니 한국문화를 잘 모른다.''''며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시키고 싶다고 연락이 오세요.
내가 직접 밥을 만들어서 그 밥을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독거노인, 소외된 이웃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정도 나누고.... 그러니까 아이들 교육에도 좋고 또,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올바른 삶을 인도해주는 산 교육이 되죠.
▶ 정준호 씨는 사랑의 밥 차뿐만이 아니라 늘 남을 돕는 일에 얼굴을 보이시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할 일이 있다면 한 가지만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저번에 마라톤 체험도 하셨죠?
제가 직접 장애인이 된 것처럼 휠체어를 타고 66㎞를 24시간 뛰는 마라톤 체험을 했는데, 저도 모르게 마지막에는 감정이 북받쳐오더라고요. 저희야 하루 체험이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장애인분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일까.... 영화 ''''오아시스''''를 보면 주인공 문소리 씨가 꿈속에서나마 일어나잖아요. 전국에 400만 되는 장애인 가족 여러분들은 그런 꿈을 늘 꾸신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가진 24살의 고운 여자 분이 있었어요. 눈으로는 말을 잘하는데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을 못 하는데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저를 방송에서 봐서 좋아하고 싶은데, 24살 처녀로서의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감추면서도 표현해내는 것을 보고 몸은 비록 장애가 있지만 24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구나 생각했죠. 정말 꽃다운 나이잖아요. 제가 다음에 시간 나면 꼭 온다고 했는데, 약속을 해 놓고 2년을 잊어버린 거예요.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결국은 편지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도넛이랑 사가지고 갔다 왔죠.
▶ 그런 많은 일들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 양반이 정치하려고 그러나...''''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한 번 해볼까요? (웃음) 안성기 선배님이나 박중훈 선배님, 장동건 씨, 신현준 씨, 안재욱 씨 등 친한 분들이 항상 저에게 ''''정 의원''''이라고 해요. (웃음) 박상원 선배님이나 김승현 선배님도 ''''내년에는 출마하는 거야?'''' 하세요. (웃음)
저는 아직까지 그런 것을 해보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고 나중에라도 그런 쪽에 관심이 생기면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겠지요.하고 싶은 것을 숨겨가면서 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존경하는 부모님 밑에서 떳떳하게 교육도 받고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부끄러운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정치든 뭐든 제가 하고 싶은 의욕이 있으면 떳떳하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고 하지...
그런데 아직은 그런 것에 깊숙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제가 봉사활동이나 이런저런 고향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예산에서 태어났고, 사랑하는 내 고향이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 주변 분들이 사시는 곳이니까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어렸을 때 문화적인 혜택을 못 받다 보니까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어려웠거든요. 부모님, 친구, 주변 분들에게 그나마 공연이나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그런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