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첫날 밤을 중경 호텔에서 묵고 이틀째 아침을 맞는다. 새벽 5시. 한 방을 쓰는 가이드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테이블 전등을 켠다. ''티베트의 고독''에 나오는 바보 주인공처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떠올려본다. 아침 식사 전까지 간밤의 일을 간단히 적고 ''''아티샤의 명상요결''''을 30여분 읽었다.
이틀째 낮에는 먼저 대족에 있는 석각이라 해서 ''''대족석각''''으로 불리는 불교조각을 감상했다. 이어 삼협댐 박물관을 방문해, 삼협댐 건설 이전의 생활사와 건설 이후 상황을 살펴보았다. 오후에는 중경 임시정부를 방문했다. 성금으로 만원을 내고, 방명록에 ''''선열들의 나라사랑을 이어받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틀째 저녁 8시 칭창열차에 몸을 실었다. 청해성과 서장성을 잇는다고 해서 청장(칭창)열차이다. 일행 14명은 4인 1실에 탔지만, 나는 4인 1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6인 1실에 타야만 했다. 여행사 가이드는 내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차액 6만원을 포함해 10만원을 돌려줬다. 나는 열차 식당칸에서 현지 가이드와 캔맥주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사흘째. 새벽 3시 칭창열차에서 아침을 맞는다. 막 일어나니 속이 약간 쓰리다. 간 밤에 먹은 맥주와 매운 닭발볶음 탓인가 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따뜻한 녹차를 마시고 나니 속이 진정된다. 식당칸으로 옮겨 ''''티베트의 고독 2''''를 마저 읽었다. 이책의 원제는 ''''진애낙정(塵埃落定)''''으로 부족장 ''''투스'''' 들의 흥망사를 통해 티베트의 역사, 문화, 풍속, 가치관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여자 부족장 ''''롱콩 투스''''의 딸 ''''나타''''와 같은 여자와 연애라도 한번 해 보았으면 하는 욕망이 일었다.
새벽 5시25분. 동이 트면서 차창으로 초록들판이 펼쳐진다. 집과 연기, 네모반듯한 경작지, 연못과 강, 전봇대와 전선, 야산, 붉은색과 하얀색의 2층 집, 마을과 동네 어귀에 여러대의 차, 벽돌공장과 높은 굴뚝 등 사람 사는 흔적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전은 ''''아티샤의 명상요결''''과 ''''티베트의 혼''''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 이후에는 가이드와 대화를 나누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깨어 아침인 줄 알고 시간을 보았더니 밤 11시 45분. 1시간 가량 책을 보고 다시 잠을 청했다. 정말 칭창열차에 있다 보니 시간 가는 것을 알 수가 없다. 단편 ''''가죽끈에 묶인 영혼''''에서, 여주인공이 순례를 하면서 날짜 가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해가 한번 뜰 때마다 가죽끈에 매듭을 하나씩 짓는다. 티베트에서는 이런 방법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 아닐까 수긍이 갔다.
나흘째. 새벽 5시 20분. 동이 트면서 차창으로 여명이 밝아온다. 차창 밖 풍경은 초원과 초원 군데 군데 고인 물 웅덩이, 그 곳에 비친 하늘과 구름으로 멋진 조화를 이뤘다. 고도 4,600미터라고 열차 게시판에 문자가 나온다. 일출을 보고 돌아오니, 일행 중 한 분은 새벽 하늘에서 머리 위로 막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과 유성을 보았다고 한다. 오전에는 ''''아티샤의 명상 요결'''' 읽기에 속도를 내어 두 번째 요결 154쪽까지 읽기를 마쳤다. 나의 티베트 여행 중에 독서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나흘째 점심시간. 라싸로 가는 칭장열차 안. 고산증과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산 반응은 고산의 산소공급이 평지의 70% 밖에 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다. 점심 식사 후 속이 편치 않고 졸려서 바로 잠을 청했다.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심해 잠에서 깨어보니 오후 2시. 갑가지 메슥거리고 구토가 나오려한다. 열차 탑승 후 45시간 만이다. 현지가이드가 여승무원에게서 구해서 가져온 산소호스를 객실 산소공급기에 연결했다. 나는 산소호스를 코에 꽂고 오후 5시까지 지속했다. 오후 5시25분에 라싸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상태가 나아졌다. 저녁에 호텔 도착해 샤워를 한 후 바로 잠을 청했다.
닷새째 새벽. 갑가지 머리에 통증이 심해지고 구토가 난다. 산소통 2개를 마시고 고산증 약을 먹었다. 산소통은 모기약 스프레이 크기만 하고, 1-2분 정도 호흡하면 동이 난다. 같은 방을 쓰는 가이드가 가습기를 틀어 머리 맡 탁자에 설치하고, 창문을 열어 놓는다. 또, 열 손가락에 수지침을 놓아 피를 빼내 혈을 뚫어 주었다. 간신히 잠이 들어 아침에 깨어보니 또 머리가 아팠다. 아침 식사 전에도 산소통 1개, 점심 식사 전에도 1개, 저녁 식사 전에도 1개를 마셨다. 저녁에는 아예 산소통 5개를 추가로 구입했다.
힘든 중에도 낮에는 관광일정을 소화했다. 오전에는 불교대학원이라 할 수 있는 세라사원을 방문했다. 스님들의 토론장면은 현지 사정상 보지 못했다. 이어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 노부링카를 관람했다. 오후에는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포탈라궁을 관람했다.
엿새째. 새벽에 어김없이 고산반응이 찾아왔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사흘째 고산반응이라니... 앞으로 사흘을 더 버텨야 하는데, 아! 고통스럽다. 내가 왜 이곳에 왔던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죽음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면 차라리 고통없이 편하게 빨리 죽는 것이 나으리.'' 산소통 1개를 마시고 진정이 된 후 간신히 잠이 들었다. 아침 식사 전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산소통 1개를 마신 후 정신을 차렸다. 입맛도 없는데 억지로 아침 식사를 챙겨 먹었다. 시가체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또 산소통 1개를 마셨다.
이날은 라싸에서 360킬로미터 떨어진 시가체로 8시간 30분을 전용버스로 이동해 판첸 라마가 모셔진 타쉬룽포 사원을 방문했다. 가는 길에 암드록초 호수를 보기로 했는데, 비와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려 아름다운 호수를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가체로 가는 동안 알롱창포 강의 거센 흐름과 강가의 산들, 야크 떼와 티베트 사람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푸른 보리밭과 노란 유채밭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이레째. 시가체에서 다시 라싸로 돌아왔다. 조캉사원을 둘러보았다. 라싸 호텔에서 밤에 산소통 2개를 마셨다.
여드레째. 새벽 5시에 산소통 2개를 마셨다. 어제 밤에도 고산증을 겪었는데, 하루 밤에 고통을 두번 겪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오전에는 자길사와 드레풍 사원을 관람했다. 오후 3시 라싸 공항에서 중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탑승 전 짐 부칠 때 산소통을 빼내라고 해서 2개를 꺼낸 후 갑자기 고산반응이 나타났다.머리가 아프고 구토증세가 나면서 힘이 쭉 빠졌다. 곧바로 산소통 2개를 이어서 코에 대었다. 그 때 어느 누구도 나의 고통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이번 티베트 여행 중 일행 가운데, 유독 내게 고산반응이 심하게 나타났다. 14명 일행 중 중학생 한명이 많이 힘들어 했지만, 산소통을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1-2일 정도 머리가 약간 아프다가 말고 정상 컨디션을 유지했다.
나는 티베트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불교의 성지 티베트에서 티베트 불교의 경전을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욕심은 고산증 고통으로 인해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라싸로 들어서면서부터 라싸에서 벗어날 때까지 5일동안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고산증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 육체적 고통, 죽음의 고통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한 때 정신적 충격과 혼란으로 정신적 고통의 극한을 겪어 본 나로서는 육체적 고통을 가볍게 생각해왔다. 뭐 죽음이 별건가, 이런 오만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고산증 고통의 경험을 통해 육체적 고통 앞에서 어떤 정신적 만족도 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경전을 통해서 얻은 바는 없지만, ''''인간의 행복은 신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가 우선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자가 함곡관으로 돌아올 때 ''''사람들을 올바르지 않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나의 이 <도덕경>을 내가 태워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군.''''이라고 독백을 늘어놓는다. 노자의 독백이 이제 나의 독백으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