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영어의 알파벳도 이런 모양을 본떠 사물을 묘사하는 기능이 있다.
월남전 당시 한진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유통회사들은 파월국군의 보급품을 나르는 일을 했는데 길이 없는 밀림지역에서는 화물을 지게에 지어 날랐다. 미군들이 이 모습을 보고 ''A-frame''이라는 별칭을 붙였고 이제는 지게를 뜻하는 정식명칭이 됐다. 지게의 모양이 ''A''자와 닮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밖으로 굽은 안짱다리를 영어로는 ''bow-leg''이라고 한다. 활처럼 휜 모습을 본떠 만든 말이다. 우리말로 안짱다리를 ''O-다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역시 같은 원리다.
꼭 알파벳이 표의문자로 쓰이지 않아도 영어단어 가운데 사람이나 동작의 모습을 묘사해 단어가 만들어진 경우는 너무나 많다.
스포츠경기를 보자. 축구에서 코너 킥(corner-kick)은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축구장의 양 모퉁이에서 공을 차는 모습을 보고 이를 묘사한 것이니 이 역시 한자와는 약간은 다르지만 모양을 보고 만든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요리는 ''T-bone steak''이다. 쇠고기의 등심부분에 해당하는 이 스테이크는 우선 그 양에서 사람을 압도한다. 식당에 가서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주문한 것을 보니 거의 방석만한 스테이크였다.
"까짓 거 여자가 먹는 것 나라도 못 먹을까"라고 생각해 주문했다 반도 못 먹고 남긴 쓰라린 기억이 있다. 미국인들의 식사량(portion)을 알았다면 이렇게 계란으로 바위 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많은 알파벳글자를 두고 T자가 등장할까? 갈비를 떼어내고 남은 등 부분을 잘라내면 등뼈와 갈비가 붙은 부분이 각이 져 ''T''자 모양의 뼈가 스테이크의 중앙부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뜻글자, 소리글자를 가리지 않는다. 쓰는 사람 마음이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