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진단서 ''부르는 게 값''…의사 ''손 안대고 코풀기''

상해진단서 발급 수수료 병원마다 제각각…경찰 "처벌기준은 일수 보단 죄질"

김모(29) 씨는 지난달 20일 밤 부산 사하구 한 술집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 손님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다.

김 씨는 술병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배와 다리 등에도 부상을 입었으며, 친구 역시 팔과 다리에 심한 멍이 드는 부상을 당했다. 김 씨 일행은 경찰에 신고한 뒤 곧장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김 씨는 의사로부터 ''3주간 치료를 요함''이라는 진단을, 김 씨의 친구는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김 씨가 3주 진단서를 발급받는 데 든 돈은 무려 12만 원. 이에 비해 친구의 진단서는 5만 원이었다. 진단 일수에 따라 ''진단서 가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점이 의아했지만 급한 사정 탓에 따지지 않고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경찰서에 제출했다.

일선 경찰의 폭행사건 처리 기준 및 방침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병·의원에서 발급하는 상해진단서 수수료는 종전처럼 진단 일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 논란이 일고 있다.

상해진단서의 경우 전치 2주 이하는 5만 원 정도의 발급 수수료가 부과된다. 일반진단서가 1만 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크게 비싼 편. 게다가 3주 이상의 진단서일 경우 10만 원이 넘는 수수료가 부과된다. 게다가 병·의원마다 발급 수수료가 제각각이어서 시민들의 불만이 많다.

현재 상해진단서 발급 수수료에 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진단서 수수료는 비급여 부분으로 책정될 뿐 아니라 의사 자율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진단 일수와 병원에 따라 발급 수수료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해진단서의 진단 일수에 따라 수수료에 차이가 나는 것은 의사들의 법적 책임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라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폭행사건에서 전치 2주 이하의 진단이 나올 경우 상호 합의가 우선이며,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간단한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3주 이상의 진단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신청될 확률이 높고 이 경우 정식 재판에 회부되기 때문에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에게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부산 사하구 한 정형외과 의사는 "전치 3주 이상의 진단서를 발급할 때는 의사로서 심리적인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진단서 발급비용은 그런 위험 요소를 감수하는 데 따른 보상금 개념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사들의 주장은 요즘 경찰의 폭행사건 처리 방침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3주 이상 진단이 나올 경우 대부분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최근 추세로는 진단 일수보다 죄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진단 일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전치 1주의 폭행사건이라도 죄질이 나쁘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전치 4주 정도가 나와도 죄질이 나쁘지 않다면 굳이 영장을 신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일부 의사들은 진단서 수수료를 더 올려 받기 위해 ''15일 진단'' 등의 편법을 이용해 2주 진단을 교묘하게 3주로 만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부산의료소비자시민연대 임미자 공동대표는 "의사의 재량에 따라 진단 일수가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진단서 발급 수수료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수수료의 일정한 기준을 세우고 투명한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민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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