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동냥질이라도 해서 야구하고 싶었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2,000안타 및 살아있는 기록제조기

양준혁
프로야구 삼성-현대의 3연전이 시작된 지난 15일 대구구장. 경기 전 만난 양준혁(38. 삼성)은 다소 피곤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9일 잠실 두산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0안타를 때려낸 뒤 수많은 인터뷰를 소화해야 했고 경기도 빠짐없이 치러야 했기 때문. 일주일 쉼없이 쬐던 언론의 따가운 조명에 잠시 시들했던 양준혁은 그러나 ''야구''(野球) 얘기가 나오자 이내 물먹은 화초마냥 금세 눈이 반짝, 활기가 돌았다.

▲"동냥이라도 해서 야구한다고 했죠"

초등학교 시절(대구 남도초)부터 시작했으니 줄잡아도 30년 세월, 지겹지 않을까. 그러나 양준혁은 "야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며 도리질이다. 70년대 말 아버지 손을 잡고 찾은 대구구장에서 환호와 열기. 당시 최고인기를 구가하던 고교야구에 매료된 양준혁은 부모를 졸라 ''평생의 업''(業), 야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다. 부모 중 한 분은 꼭 붙어다녀야 할 정도의 관심과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세세히 말하긴 힘들지만 뒷바라지 제대로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죠. 5학년 때였나요? 어머니께 ''동냥해서라도 야구해야겠다''고 했어요. 어머니 가슴에 못박을 말이었지만 그만큼 야구가 하고 싶었죠."


[양준혁 인터뷰 동영상 "동냥질이라도 해서 야구하고 싶었죠"]


▲"해외진출이요? 시대를 잘못 탔나 봐요."

그랬던 양준혁이 이젠 ''살아있는 역사''다. 지난 1993년 데뷔 이래 15시즌을 맞는 2007년까지 18일 현재 통산 2,010안타 1,245타점 1,148득점 3,428루타 400 2루타 1097볼넷 등 양준혁이 출전하면 야구사가 새로 쓰인다. 이미 국내무대를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미국, 일본 등 해외무대는 인연이 없었다.

양준혁은 "물론 실력도 이유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한다. 좀 더 일찍 프로에 입문했거나 더 나중에 태어났다면 상황이 달랐을 거란 얘기다. 입질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2001시즌 뒤 LG에서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렸을 때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연락이 왔단다. "솔직히 큰 무대가 두려웠죠. 또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부회장 전력 때문에 국내복귀했을 때 괘씸죄로 구단이 받아줄지도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친정팀 삼성에 왔고 하마터면 프로야구사에 없을 수도 있던 대기록이 쓰일 수 있었다.

▲"2,000안타는 다음날 바로 까먹어…200홈런-200도루 꼭 하고파"

양준혁
양준혁은 고독한 러너다. 지난 2005년 장종훈 현 한화 코치가 가진 통산 최다안타(1,771개)를 경신한 데 이어 올해는 2,000안타 고지도 넘었다. 경쟁자가 없는 레이스, 공허함은 없을까.

이번에도 양준혁은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2,000안타는 일부러 다음날 바로 잊으려 했어요. 안 그러면 허무함, 허탈감에 빠져나오질 못하죠. 인생도 그렇듯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2,000안타 기록 수립 뒤 양준혁은 2,500개, 더 나아가 3,000안타 목표를 언급했다. 이외도 이룰 것이 많다. "장종훈 선배의 홈런기록(340개)에 근접해있고(324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0홈런-200도루''(180도루)를 꼭 이루고 싶어요."

PS)기자는 인터뷰 뒤 구단을 통해 양준혁의 사인볼을 부탁했다. 지인의 초등학교 야구선수 아들 때문이었다. ''동냥해서라도 야구하겠다''고 떼쓰던 소년 양준혁, 이제는 한국야구의 거인이 됐지만 어린 선수들이 ''동냥은 아니더라도'' 사인볼을 받아달라고 떼를 쓰게 만든, 유쾌한 아이러니도 만들어냈다.


○양준혁은?▲1969년 5월26일생▲188㎝, 100㎏▲대구 남도초-경운중-대구상고-영남대▲프로=삼성(1993년)-해태(99년)-LG(2000년)-삼성(02년~)

○수상 경력=▲타격왕-1993, 96, 98, 2001년▲최다안타-1996, 98년 ▲최다타점-1994년▲장타율왕-1993, 96년 ▲신인왕-1993년▲골든글러브-7회(96~98, 2001, 2003~2004, 2006년) ▲올스타전 출전-13회(93, 95~2006년)

○주요 기록(18일 현재)=▲최다 2루타(400)▲최다득점(1148)▲최다 볼넷(1097)▲최다 타점(1245) ▲최다 루타(3428) ▲국내 프로야구 최초 사이클링히트 2회 기록(96년 8월23일 대구 현대전, 2003년 4월15일 수원 현대전-최고령 사이클링히트기록) ▲14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93~2006년 · 최초)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93~2007년 · 장종훈에 이어 두 번째) ▲9년 연속 타율 3할(93~2001년 ·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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