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그들의 사투리는 부산사람 저리 가라 였습니다. 지난 주말 기자와 한바탕 수다를 펼친 여성들은 얼마 전 부산시청에서 열렸던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본선에 진출한 외국인들입니다.
한국에 대한 호감과 부산에 대한 애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 그들을 보며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한국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진 외국인 여성들과의 데이트. 여러분도 그 솔직담백한 대화 속에 한번 빠져보시지 않겠습니까?
#첫만남
한국을 잘 아는 그들이 바라본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모 방송국 인기 오락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처럼 부산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부산과 부산사람, 한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마침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지난 1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대회와 시상이 끝난 후 취재의 취지를 알려주며 본선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섭외를 시작했다. 7명이 흔쾌히 승락했다. 그 때 갑자기 나온 질문, "꼭 미녀들만 참석할 수 있나요?".
"네, 그런데 여러분은 모두 다 미녀라 참여할 수 있어요~!"
일요일 오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다시 약속 장소를 알려준다. 그 때 급하게 날아온 두 개의 문자메시지. 일이 생겨 못 온다는 내용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서운한 마음이 몰려온다. 하지만 어쩌랴. 일요일에도 기자와의 만남에 선뜻 응해준 나머지 다섯 명이 더 고마운 것을.
#부산 느낌
다섯 명의 미녀들과 광안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광안리 커피점으로 향했다. 차가운 카페라떼를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산에 오게 된 계기부터 물어봤다. 이들 가운데 맏언니인 중국인 강새화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 부산외대를 선택해 지금은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는 1년 정도 됐다고. 베트남에서 온 꾸티밍응옥 씨 역시 드라마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됐고 교환학생으로 부산외대에 와서 8개월째 공부 중이다. 중국인인 여추함 씨는 원래 한국어를 전공하다 인제대 교환학생으로 3개월 전 부산땅을 밟았다. 일본인 센고쿠 마나미 씨는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홈스테이를 하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지난해 2월 경성대로 유학을 오게 됐다.
유일한 유부녀인 러시아의 막시모바 안나 씨는 지난해 8개월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다녔고 현재는 남편이 러시아에서 부산지사로 올 예정이라 동아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은 왜 그렇게 드라마랑 달라요?" 새화 씨가 갑자기 기자에게 열변을 토한다. "드라마에 많던 미남 미녀 어디로 간 거예요. 미남 미녀는 다 배우였던 거예요?" 실망이 정말 커 보인다. 응옥 씨도 드라마에서 보던 아름다운 곳이 막상 부산에 오니 많지 않다고 고백한다. "김해공항에 내려선 순간 꽃도 나무도 없고 너무 삭막해 보였어요."
새화 씨는 "드라마에서는 부유한 사람들만 나오지만 부산에 와 보니 못 사는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더 못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부산 사투리는 어떤 느낌일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싸우는 줄 알았어요. 막 야단치는 것도 같고 무뚝뚝하기도 하고요."
안나 씨는 러시아말과 부산 사투리가 억양이 비슷해서 재미있다고. 정말 그런거 같기도 하다.
"부산 남자들은 화를 잘 내요. 특히 아저씨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부인이 불쌍해요." 새화 씨는 부산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집안일 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 같단다. "왜 맞벌이를 하는데 한국에선 여자들이 집안일을 다해요?"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추함 씨는 중국에서는 남자가 요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한다. "아빠는 엄마가 요리 하면 사흘은 치워야 한다고 엄마 부엌 들어오는 걸 말려요." 그들에게 아직 한국은 남녀 관계가 불평등한 나라로 비치고 있었다.
안나 씨는 택시를 탈 때마다 고생 한다고. "''어디 어디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 운전기사 아저씨들은 어색한 말투 때문인지 무섭게 다그쳐요. 차분히 들어주면 되는데… 어떤 사람은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 돌아 가기도 하고요."
무심코 쳐다보는 눈길도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지나친 관심도 사절이다. 마침 사진 촬영을 위해 광안리 바닷가로 나섰을 때 한 남자가 안나 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 출신이냐" 부터 "왜 왔느냐" "미인이다" 등등 사적인 질문을 던지며 추근대는 그에게 안나 씨는 끝까지 친절히 대해줬다. 나중에 안나 씨에게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물어보니 "한국사람이잖아요? 어떻게 나쁘게 대해요" 라고 말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반면 부산남자를 사귀는 마나미 씨와 새화 씨는 따뜻한 남자친구의 마음에 반했다고.
"나에게만 잘해주는 모습에 끌렸어요." 마나미 씨의 남자친구는 직접 취재장소까지 마나미 씨를 데려다 주고 갔다. 기자를 포함해 모두들 부러운 눈빛으로 그 커플을 쳐다봤다.
새화 씨의 남자친구는 더 적극적인 부산남자. 같은 학교 선배인 그는 꾸준히 애정공세를 펼치다 새화 씨가 아픈 사이 리포트를 대신 써 줘 새화 씨의 마음을 얻었다고. "와 멋있다." 또 다시 부러운 눈빛 작렬~.
"한국 남자들은 무뚝뚝해도 로맨스 기간은 길어요. 러시아 남자들은 잘 대해 주는 기간이 2주면 끝인데 한국 남자들은 몰래 꽃도 꽂아두고 선물도 두고 가곤 해요.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안나 씨는 러시아 남자들은 선수(?)인데 한국 남자들은 깊은 정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스러운 남성이 많은 것도 이들에겐 신기한가 보다. 응옥 씨는 영화 ''왕의 남자''의 배우 이준기가 진짜 여자인 줄 알았다고. "학교에서 남자들이 분홍색 옷을 잘 입고 귀고리도 하고 여성스러운 가방도 잘 메고 다녀요. 처음에 여자친구 가방인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참 웃는다. 이들에게 부산 남자는 권위주의적인 동시에 여성스러우면서 자상한 이미지로 비치고 있었다.
마나미 씨는 남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며 자리를 떠서 중간 이후 대화엔 빠지게 됐다. 마나미 씨, 아무리 남친이 좋다지만 우리는 서운해요….
근처 바닷가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지만 회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들 잘 먹는다. 특히 새화 씨는 한 쌈 싸서 푸짐하게 먹는 모습이 완전 부산 사람이다.
시원한 맥주로 건배를 하고 다시 수다의 세계로 빠져든다.
"한국 사람들은 외모를 너무 따져요. 특히 남자들은 여자 외모만 봐요. 아마 방금 전에도 안나 씨가 안 예뻤으면 그 남자 말도 안 걸었을 거예요."
응옥 씨가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를 화제로 꺼냈다.
"한국에서는 성형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가 봐요. 연예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성형했다고 얘기해요. 중국에서는 성형하면 오히려 인기가 떨어져요." 새화 씨는 중국에서는 자연미인만 인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도 수업에 계속 빠지던 여학생이 애교를 부리면 교수님이 ''괜찮아 괜찮아'' 해요. 예쁘면 다 용서돼요. 성품보다 외모로 사람을 봐요." 새화 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사람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도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5분 10분 늦는 것은 대부분 괜찮다고 생각해요. 약속 시간에 맞춰 출발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취소해요. 늦어도 왜 그리 핑계가 많은지…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시간도 소중한 것 아닌가요." 추함 씨는 한국인들의 시간 개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 외에도 이들이 신기해 하거나 안타까워 하는 한국 문화는 한둘이 아니다. 특히 결혼 문화.
"세상에 어떻게 결혼이 30분 만에 끝나요? 진짜 빨리 먹고 빨리들 가요. 결혼식에 갈비탕이 웬말인가요. 재미도 없고 추억이나 의미도 없어요. 한국은 전통 결혼이 좋은데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안나 씨와 추함 씨는 한국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하루종일 혹은 이틀간 결혼을 축하해주며 다같이 즐긴다고 말했다.
또 한국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새벽에 일 끝나서 돌아가는 야채 장수 아저씨가 몇 시간 후에 다시 장사해요. 한국 사람들은 언제 쉬나요?" 새화 씨는 한국인은 야근도 너무 많이 한다며 중국은 퇴근 시간만 되면 회사에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잘 싸우고 잘 웃고 우는 한국인들이 솔직해 보이고 정이 많아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응옥 씨는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구두 닦는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하며 늘 사탕을 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은 친절을 베푸는 우리를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지면서 다음에 다같이 맥주 한 잔 하자고 약속을 했다. 국적을 떠나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이 함께 수다도 떨고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속마음을 터놓는 것처럼 유쾌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새화 씨, 남자친구 정말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