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환자 가운데 소위 50년대나 60년대 국내에서 유행하다 지금은 사라져 볼 길이 없던 기생충이나 질병이 보이면 온 병원의사들이 몰려들어 이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질병이 있었다. 수도사정이 좋지 않던 50년대 많이 생겨 소위 ''갈갈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세면바리''가 바로 그것이다. 신병 두 명이 동시에 걸려 무척 고생을 했는데 우리 군의관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전 병원에 소문을 내 진료실이 북새통으로 변했다.
이 진귀한 세면바리가 전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영어로 세면바리는 ''pubic lice''라고 한다. 성기 주변에 기생해 가뜩이나 성관계가 문란한 미국의 10대들이 밤잠을 설치며 긁어대기 정신 없다.
미국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샤워를 할 수 있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에나 있는 이런 질병이 설치는 것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질병이라는 것이 꼭 옛날 옛적에 유행하던 것이 돌아오는 것만도 아니다.
성병 자체도 어휘가 변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해도 성병은 생식기 주변에 걸리는 병으로만 여겼다. 영어단어 ''venereal disease''라는 말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요즘은 이 명칭보다는 ''sexually transmitted disease''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성기주변에 걸리는 병이 아니라 성행위를 통해 전염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실제 18세기까지 성병의 대명사였던 매독(syphilis)은 성기에 생기는 염증보다 방치하면 뇌에까지 침투해 정신질환을 유발한 탓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요즘 화제에 오르는 성병은 에이즈다. 에이즈도 성기에 생기는 증상보다는 몸 전체의 면역기관을 무력화시켜 다른 질병 때문에 환자가 목숨을 잃는다.
미국에서 가장 만연한 성병은 현재는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다. 성기에 작은 사마귀가 생기다 이것이 암으로까지 발전하는 질환이다. 아직 확실한 치료제나 예방백신도 없는 실정이다.
언어가 변하면 새로운 어휘나 별명까지 만든다. 사람이 변하니 말도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