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척의 차이

[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

영어
미국은 우리보다는 휠씬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다. 이런 예를 보여주는 것이 일종의 촌수 따지기다.

요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재종간''이나 ''당숙''이라는 말은 점점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가족과 친척의 구별이 없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사라지는 증거라 하겠다.

미국에서는 이런 사상 자체가 없다. 가족은 가족일 뿐이다.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친척관계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고 가족으로 느끼는 지를 물어보니 이 사람들의 가족관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좁다. 부모와 형제까지는 자신의 가족이지만 형수는 남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형수와는 피가 섞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형이 전쟁터에서 전사하면 형수와 결혼해 조카들을 키우는 습관이 유럽에는 남아 있었다.


일본에도 50년대까지 이런 결혼이 보통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조카는 어떻게 생각하냐니까 "내 아내에게 내 조카는 가족이 아니지만 나는 조카가 가족"이라고 말해 한 이불 덮고 사는 부인과도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미국인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이모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는데 이모의 언니인 어머니가 이를 모른척하자 자녀가 화가 나 "She is your sister, not mine(내 여동생이 아니라 어머니 여동생이에요)"라고 말한다.

가족중심인 우리라면 이모는 이모일 뿐 어머니와 무슨 관계냐가 중요하지 않다. 나와 이모만으로도 충분히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직접 가족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걸고 넘어진다.

그럼 시부모와 며느리,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는 어떨까? 소위 ''in law''관계인데 나와 관계는 없지만 법적으로 묶여 가족이 된 경우를 말한다. 이런 사이이니 갈등이 심하기는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처럼 가족에 대한 관계가 작은 범위인 반면에 친척이라는 말은 아주 광범위하게 쓰인다.

필자는 시카고에 먼 친척이 사시는데 정확히 어머니의 이모님, 즉 외할머니의 누이동생이 사신다. 우리식이라면 이모할머니라는 명칭이 어울리지만 서양에서는 그냥 ''aunt''다. 어머니의 이모이니 나에게도 이모라는 말이다.

그런 식이라면 이웃 아저씨도 아저씨, 동네슈퍼마켓 아주머니도 아주머니이니 우리나라는 다 친척인 셈이 된다.

친척이라는 말이 영어의 ''relative''와는 다른 의미라는 사실을 잘 반증한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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